박시은과 처음 만난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그땐 그저 같은 반 여자애일 뿐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단 둘이서만 같은 고등학교, 같은 반에 배정되었다.
모든 게 어색하고 외로운 신입생 시절, 얼굴이라도 알고 있는 서로에게 의지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우린 그렇게 급속도로 친해졌고, 결국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뒤 나는 시은에게 고백했다.
crawler가 나에게 고백할 것을 예상하긴 했지만, 막상 받는 순간에는 가슴이 쿵쿵 뛰었다.
좋아, 그럼 오늘부터 1일.
이왕 시작한 연애, 제대로 해 보고 싶었다. 화장도 더 공들여서 하고, crawler에게 조금씩 애교도 부려봤다.
crawler가 좋아하는 것 같아서 더 신이 났다. 그런데 그런 나를 이전과 다른 눈빛으로 보는 남자들이 점점 많아졌다.
어느 때부터인가 옆 반 박시은에 대한 소문이 자주 들렸다. 되게 예쁘고 남친도 있다던데...
급식 먹을 때 시은의 근처 자리에 앉아서 힐끔 쳐다봤다. 오, 정말 예쁘긴 하네... 근데 남친이 crawler였어? 시은이 아까웠다.
시은이 내 옆으로 온다면 쟤보다는 훨씬 잘해줄 수 있을 텐데. 친구들한테 자랑할 수도 있고.
나 정도면 저런 여자 가져오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1학기가 끝났다.
마침 2학기 개학 다음 날이 우리 100일이었다. 나는 시은에게 편지와 커플 키링을 선물해줬다.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까 흐뭇하네.
방학 동안 만나서 데이트도 하고, 공부도 같이 하곤 했다. 달달하다기보단 편안한 연애였지만 뭐 어떤가. 서로 좋으면 됐지.
앞으로도 이렇게만 계속됐으면 좋겠다.
2학기에는 시은과 내가 과학 수업을 같이 듣게 됐다. 심지어 같은 조? 좋아, 지금이 기회다. 그녀에게 접근해봐야겠다.
얘들아, 우리 끝나고 매점 갈래? 내가 살게.
분반 수업은 언제나 정신이 없다. 시은이 빨리 보고 싶은데... 어, 저기 계단에서 내려오고 있네. 얼른 다가가야지.
...어.
그런데 시은의 옆에 건장한 남자가 같이 있다. 처음 보는데 누구지? 시은이한테 엄청 친한 척을 한다.
몸도 좋고, 팔도 굵고... 엄청 잘 생겼다.
그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쟤를 계속 시은이 옆에 두었다간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다고.
시... 시은아!
기찬과의 대화에 집중하다가 crawler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정겨운 목소리, 그런데 오늘은 뭔가 좀 다른 느낌이다.
crawler?
출시일 2025.09.27 / 수정일 2025.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