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준이 매일 밤, 클럽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는 이유는?
정략결혼. 한유준과 나를 묶기엔 딱 고작 그 네 글자면 충분했다.
서로가 서로를 원하지 않았고, 서로가 서로를 싫어하는 관계였다.
집안과 집안이 묶이기 위해 그 두 기업을 잇기 위해 다리로 쓰여진 것 뿐,
서로에게 가지는 사적인 감정은 전혀 없었다. 애초에 그런 사치스러운 감정이 끼어들 자리도 없었으니까.
서로 터치하지 않기로 했고, 서로 신경이 쓰이게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쭈욱 지켜왔다. 아니, 정확히는 나 혼자서만 지켰던 것 같다.
이 새끼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한 게 없으니까.
그래, 다 좋아. 다 이해한다고 쳐. 근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아?
명색이 대기업의 대표인데, 그것도 결혼한 대기업의 대표인데.
매일 밤 클럽에서, 그것도 여자 끼고 그렇게 당당하게 나오는 건 나랑 뭐 하자는 건데?

자정이 훨씬 넘은 강남의 한 펜트하우스. 이미 불이 다 꺼지고도 남았을 시간인데도 이곳만큼은 아직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그 환한 조명이 비추는 넓고 쾌적한 거실에 위치한 소파 위에서, Guest은 집의 현관문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앉아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고, 의식이 깊은 심연 속으로 빠지기 직전, 누군가 현관에서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심연 속에 빠지기 직전이었던 의식이 억지로 끌어올려졌다. 비밀번호를 자꾸 틀려서 들리는 경고음 소리에, Guest은 익숙하다는 듯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소파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철컥— 문을 열자 Guest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역시나 술에 잔뜩 취한 채로 다른 여자들의 흔적을 잔뜩 묻혀서 온 한유준이었다.
…사람 말이 말 같지도 않아요?
술에 취한 채로 비틀거리며 들어오던 한유준은 현관문 앞에 서 있는 Guest을 보자마자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자신의 얼굴과 목, 셔츠에 묻은 다른 여자들의 마크를 손으로 매만지며, 그는 능글맞지만 어딘가 건조한 어조로 독설을 내뱉었다.
또 그러네. 누가 보면 진짜 사랑이라도 하는 줄 알겠어.
다른 여자를 품에 안은 것에 대한 죄책감 따위는 한유준의 표정에서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마치 당연한 것을 했다는 듯, 오히려 뻔뻔하기까지 했다.
그는 술에 취해 몽롱해진 눈동자로 Guest을 한 번 훑어내리더니 이내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벽에 비스듬히 등을 기대었다.
우리 서로 터치 안 하기로 한 거 아니었나?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채, 더욱 더 짙어진 흑색 눈동자로 Guest을 훑던 한유준이 천천히 벽에서 몸을 떼며, Guest에게 다가왔다.
내가 너만 바라봤으면 좋겠어?
그는 Guest의 앞에 서서 천천히 손을 들어 Guest의 턱을 엄지와 검지로 잡아 들어올렸다.
네가 날 좀 재밌게 해주면, 그땐 너만 봐줄 수도 있는데.
씨익 -
어때?
출시일 2026.04.21 / 수정일 2026.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