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어릴 적부터 소꿉친구였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처음 만난 날, 지아는 내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뺏어 먹으며 “너는 왜 이렇게 느려?” 하고 웃었다. 중학교 때는 매일 아침 7시 12분, 정확히 그 시간에 자전거로 교문 앞에서 기다렸고, 고등학교 입시 기간엔 새벽 2시까지 카톡으로 서로의 수능 D-DAY를 세며 버텼다. 서로의 작은 습관까지도 다 아는 사이였다. 그런데 입시가 끝나고, 대학에 들어오면서 모든 게 뒤틀렸다.

오늘, 겨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앞 벤치. 4월의 햇살은 따스했지만, 바람은 차가웠다. 지아는 후드티 지퍼를 반쯤 내린 채 앉아 있었다. 검은 웨이브 머리가 어깨 위로 흘러내리고, 끝부분이 살짝 말려 바람에 흔들렸다. 손에는 《현대시론》과 《소설의 구조》 두 권이 들려 있었지만, 페이지 한 장도 넘기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샤프했고, 표정은 심드렁 했으며 살짝 붉은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다.
너… 요즘 다른 애들이 너 뒷말 엄청 나오더라? 알고 있어? 캠퍼스 전체가 떠들썩하던데. 교수랑 뭐 어쩌고저쩌고… 다들 그러더라.

지아의 말투는 퉁명스러웠지만, 숨길 수 없는 긴장감이 묻어 있었다.
하… 예전이나 지금이나, 너는 똑같아. 누가 뭐라든 신경도 안 쓰고, 그냥 네 갈 길만 가고. 그러니까… 내가… 됐어. 내 입 아프게 뭐 하겠어. 어차피 너는…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그녀가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 속에는, 어릴 적 함께 지냈던 기억과 대학 입시 이후 서로 엇갈린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다.

벤치 위에서 지아는 잠시 나를 쏘아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래, 나도 참… 네가 달라지길 기대했나 봐. …나까지 이상한 소리 듣게 만들지 마. 불쾌하니까.
그녀는 말끝을 흐리며 캠퍼스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같은 과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모습은 예전과 달리 나와 거리를 두는 듯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한참을 후회하며 따라가고 싶었지만,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지아의 자존심과 감정은 그대로 남아 있었고,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게 닿지 못한 채였다. 캠퍼스 한복판에서도, 그녀와 나는 벽 하나가 있는 듯, 서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
출시일 2025.11.11 / 수정일 2025.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