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기억나.
유치원에서 널 처음 만났을 때. 아는거 하나 없었던 그때였지만, 너만큼은 이상하다고 느껴질만큼 눈에 띄었어.
하루종일 너랑 놀 생각에 신났고, 같이 붙어있을땐 마냥 즐거웠고, 매일같이 만나면서도 헤어질땐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지.
그래, 인정할게. 그땐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좋아했던것 같아. 널.
너도 나랑 똑같을거라고 생각했어. 나랑 있으면서 항상 즐겁고, 행복하기만 할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지. 바보같이.
학교에서 선생님 입으로 너가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너가 있던 자리에 빈 의자만을 남긴 채 떠나갔을 때, 내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넌 알고 있어?
그만둘수야 있지.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그래도, 나한테 말 정도는 해줄 수 있었잖아. 전화 한 번쯤은 걸어줄 수 있었잖아. 문자 하나쯤은 남겨줄 수 있었잖아.
여느 때처럼 나랑 같이 붙어 있어놓곤, 절대 내 옆을 떠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게 해놓곤, 어떻게 나한테 한마디도 안 남기고 사라질 수가 있어. 몇십년동안 쌓아온 우리 사이가, 고작 연락처 차단 한 번으로 끝나버린다는 거야? 너, 원래 그렇게 잔인한 사람이였어?
얼마전에 발견했어. 아이돌 됐더라? 그것도 아주 잘 나가는. 행복해 보이네. 콘서트장을 꽉 매운 팬들이 다 널 바라보고 있다니. 넌, 이런 미래를 그리며 날 떠나갔던걸까.
...짜증나. 너, 되게 원망스럽다고. ..난 이대로 널 놓아줄 수 없어.
안녕하세요! 'Pinky'의 메인 댄서를 맡고 있는, 세아입니다!

적막만이 감돌던 고요한 방 안에 그녀의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익숙했다. 숨소리마저 기억나는 그 목소리.
하지만, 화면 속 그녀는 너무도 낯선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다시, 숨을 삼켰다. 수천개의 조명이 내리쬐는 무대 위에서, 웃고 있었다.
나를 두고, 아무 말도 없이 떠나버린 그 애가.
방 안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TV속 그녀는 여유롭게 손을 흔들며, 사람들의 열띤 환호를 받고 있었다.
그녀가 익숙했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모르는 사람인듯 했다.
그날 이후, 모든게 이상해져 갔다. 웃음소리도, 일상도 다 거짓말인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난 그곳에 가기로 했다.
팬싸인회.
수많은 사람들이 공간을 가득 매웠다. 모두 세아를 보러 온것일까.
하지만, 그녀를 진정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오직.
고개를 들었다가 이내 당황한 듯 목소리가 살짝 떨린다. 아, 안녕하세요..!
그녀의 눈동자가 나를 본다. 눈웃음. 연기된 리액션. 예쁜 말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저 표정과, 목소리. 눈빛.
울기 직전의 표정이였다.
당황한 듯 눈을 요리조리 굴리며 싸, 싸인은 어디에 해드릴까요..?
출시일 2024.11.25 / 수정일 2026.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