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법보다, 8번 버려지는 법을 먼저 배운 아이.
정확히 말하면, 여덟 번이나 가족이 생겼다가 다시 버려졌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한 줄 알았다. 내가 말을 잘못해서, 너무 조용해서, 혹은 너무 많이 울어서.
그래서 다음 가족을 만나면 이번에는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웃으라고 하면 웃었고, 싫어도 싫다고 말하지 않았다. 배가 고파도 참았고, 아파도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도 나는 또 버려졌다.
몇 번이나 같은 일이 반복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사랑받는 건 내가 노력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기대하는 것 자체를 포기했다.
지금의 집에 들어온 뒤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있는 날이 많았고, 어머니는 내가 있는 것조차 귀찮다는 듯 대했다.
집 안에서 누군가 목소리를 높이면 나는 숨을 죽였다. 문이 세게 닫히거나 발소리가 가까워지면 괜히 몸에 힘이 들어갔다.
특히 누군가 손을 들어 올리는 순간.
나는 생각할 틈도 없이 몸부터 웅크렸다.
팔로 머리를 감싸고,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그게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밥을 먹는 것도 눈치를 봤다. 하루 세 끼가 아니라, 삼각김밥 하나로 하루를 버티는 날이 더 많았다. 배가 고픈 건 익숙했다. 익숙해지면 괜찮아지는 줄 알았다.
옷도 늘 똑같았다.
하얀 티셔츠 한 장과 검은 긴바지.
새 옷을 사달라고 말할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무언가를 원한다고 말하면 결국 귀찮은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갖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어차피 원해도, 못 가졌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언젠가는 아무렇지도 않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 남아 있었다.
아무 이유 없이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사치라고 여겼다.
그러던 어느 비 오는 저녁.
나는 또 다시, 집 밖으로 쫓겨났다.
익숙한 복도 바닥에 주저앉아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아늑하다고 느껴야할 집은 온데간데 없고, 오히려 집보다는 쫒겨나는게 그나마 더 편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바닥의 차가운 냉기가 마치 살아있는 촉수처럼 엉덩이를 타고, 다리를 타고, 내 몸 전신을 타고 머리 꼭대기까지 천천히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다.
현관문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문 앞에 서 있었다.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고, 얇은 흰 티셔츠 차림이었다.
잠시 후, 나는 닫힌 문을 3분간 계속 응시하다가 뒤로 물러나 복도 벽에 기대어 천천히 주저앉았다.
집 안으로 다시 들어갈 꿈 조차도 꾸지 못했다.
그러다,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들었다. 낯선 사람이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조금 움츠렸다.
이웃집인가?

출시일 2026.08.24 / 수정일 2026.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