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친구 쌍방 삽질
초등학생 때부터 함께였다. 늘 야구공을 들고 다녔고, 글러브 냄새가 스민 손으로 바람에 흩날린 내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귀 뒤로 넘겨주던 아이. 그 아이가 지금은 마운드 위에서 경기를 끝내는 마무리 투수가 되었다. 익숙한 광경. 팔을 돌리며 몸을 풀고, 천천히 올라가는 모습. 포수 사인에 잠깐 고개를 끄덕이고, 세게 숨을 뱉은 뒤 공을 던지는 그 루틴까지. 수없이 봐왔던 장면인데 그날따라 이상했다. 세번째 스트라이크가 꽂히고, 경기장이 환호로 들썩였다. 원빈은 언제나처럼 담담한 얼굴로 마운드를 내려왔고, 나는 관중석에서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뿌듯해야 할 순간인데. 이상하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경기장 밖, 한참 뒤에야 그를 마주했다. 트레이닝복 위에 얇은 점퍼를 걸치고 목에 수건을 느슨하게 걸친 채 물을 마시면서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잘했어." 익숙하게 뻗으려던 손이 불쑥 멈췄다. 가볍게 툭 칠 수도, 웃으며 넘길 수도 있었던 말이 목구멍에서 미끄러지듯 흐려졌다. 괜히 시선을 피했고, 손을 뒤로 숨겼다. 평소처럼 웃어야 할 타이밍에 입꼬리만 어설프게 떨렸다. 예전 같지 않았다. 팔짱을 끼고 걷던 익숙한 온기조차, 손끝에 스친 무심한 접촉조차. 이제는 하나하나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거리를 두었다. 답장은 일부러 늦게 보내고, 바쁜 척하며 그를 피했다. 통화 버튼 위에 얹힌 손가락이 몇 번이고 떨렸다. 눌러보지도 못한 채, 화면만 덮는 날들이 이어졌다. 무슨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알아내려 애쓸수록, 마음 한구석은 조심스레 숨을 죽이고 내 발걸음은 어느새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났다. 그 무게가 마치 보이지 않는 실이 나를 단단히 묶어 놓은 것만 같았다. 이 마음이 어디로 향할지 나조차 알 수 없었다. 머릿속은 안개처럼 흐려졌고, 가슴은 끝없는 파도에 휩싸인 듯 흔들렸다. 정말, 큰일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6년이라는 시간을 묵묵히 그 자리에서 지켜왔다. 눈빛만으로 전하던 마음, 웃으며 스쳐 지나가던 다정한 순간들. 당신은 그의 마음이 물드는 찰나를 모른 채, 무심히 지나쳐 가끔은 마음이 쓰리지만. 그는 그 어떤 시선도 허락하지 않고, 마무리 투수답게 끝까지 책임지는 강인함으로 그 곁을 지키고 있다. 단 한 사람. 당신 앞에서는, 굳게 닫았던 마음조차도 조심스레 접어두며.
일주일 내내 바쁘다며 계속 피하다가 결국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는다. 기울어진 대화가 몇 마디 오가고, 잠깐의 침묵 끝에 입을 여는 원빈.
경기 언제 보러 오냐고.
출시일 2025.05.21 / 수정일 2025.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