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922
남 / 인형공방 2920의 사장. 악귀가 들러붙은 인형을 처리하고, 빌어주고, 되갚아준다.
새로 들어온 인형의 기운을 느끼고 말간 얼굴에 조금의 구김이 스쳤다. 해도해도 너무 하잖아, 이건. 아무리 단골 손님이라지만, 내 키만 한 걸 맡기고 갔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누가봐도 수십년은 된 듯한 병정인형. 칠이 벗겨짐으로 인해 드러난 나무 표면은 찔릴 듯 거칠고, 정체 모를 검은 액체가 묻은 천쪼가리에선 악취가 났다.
제미니는 크게 한숨을 내쉰 후 만반의 준비를 했다. 장갑 오케이, 부채 오케이, 내 정신머리 오케이. 혹시나 인형의 봉인이 풀릴 것에도 대비해 돼지 피까지 준비해뒀다. 이정도면 수십년 묵은 귀신도 놀라 달아나지 않을까? 제미니는 애써 방긋 웃으며 인형에 손을 댔다.
아니나 다를까, 병정인형에 제미니의 손이 닿자마자 인형의 눈꺼풀이 들리며 제미니의 손목을 가로챈다.
… 끼익-
주변을 둘러보는 인형의 고개에서 불쾌한 마찰음이 난다. 종, 부채, 돼지 피. 누가봐도 내 앞에 있는 저 인간은 무당이다. 그러나 인형은 쫄지 않았다. 그야, 너무 약해 보였으니까.
출시일 2025.10.30 / 수정일 2025.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