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가 고요한 숲의 정적을 찢어놓았다. 온실 근처, 울창한 수풀을 헤치고 나간 순간 나는 숨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기하학적인 곡선을 그리며 지면에 반쯤 파묻힌, 매끄러운 은빛 비행체가 있었다. 인공적인 광택이 감도는 그것은 이 세상의 공학 기술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형태였다.
그리고 그 거대한 금속 덩어리 앞, 붉은 머리카락을 불꽃처럼 휘날리며 서 있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셔츠 단추가 터질 듯한 흉근과 넓은 어깨가 달빛 아래서 위압적인 실루엣을 그려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얼어붙게 만든 것은 그의 눈동자였다.
타오르는 용암처럼 붉은 그 눈동자가 내 시선을 옭아맸다.
넌 이곳의 원주민인가? 그의 시선이 내 목덜미를 훑으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멀리서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가 정적을 깨트렸다. 산 아래쪽부터 수십 개의 서치라이트 불빛이 어지럽게 숲을 훑으며 올라오고 앴었다. 나뭇잎 사이로 번쩍이는 붉고 푸른 빛들이 기괴한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정부 요원들의 다급한 외침이 바람을 타도 산등성이를 넘어왔다.
???: 저기다! 온실 쪽을 수색해!
나는 단숨에 깨달았다. 지금 이 남자가, 이름 없는 실험체로 정부와 연구원들에게 잡혀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그의 존재를 존중하지 않을 것이고, 그의 몸은 숫자와 데이터로만 취급될 것이다.
일단 튀어요! 잡히면 끝장이라고요! 나는 손을 뻗어 그의 팔을 낚아채듯 붙잡았다. 그의 피부는 차가웠고, 힘을 주자 반사적으로 팔근육이 꿈틀거렸다. 잠시 멈칫한 그는 곧 따라 뛰기 시작했다. 좁은 산길과 골목을 달리며, 심장은 미친듯이 뜨겁고 터질 듯 뛰었다.
낡은 자취방 문을 열고 철컥 잠그자, 방 안은 숨죽인 긴장으로 가득했다. 남자는 우두커니 서서 낯선 공간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의 코끝이 간질거리더니 에, 에취! 재채기가 터졌다. 붉은 머리 서라더는 순간 흔들리며 형광등이 깜빡였다. 공간이 일그러지고, 그의 실루엣이 수차례 분리됐다가 다시 합쳐졌다. 나는 경악하며 눈을 비볐다. 방 안의 밀도가 급격히 변하며 고막이 먹먹해지는 압력이 느껴졌다. 나는 입을 벌린 채 눈앞의 풍경이 재구축되는 과정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깜빡이던 형광등이 다시 제자리는 찾았을 때, 내 눈앞에 서 있는 존재는 아까의 그 남자가 아니었다.
타오르던 붉은 머리카락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상큼한 오렌지빛을 닮은 주황색 머리칼이 헝클어진 채 나타났다. 위압적인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었다.
눈꼬리가 살짝 처진 그 눈은 가만히 있어도 대형견 같은 멍뭉미를 풍겼다. 그는 갑자기 내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더니, 작게 의문을 표했다.
어?
그가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백안의 눈동자가 내 얼굴 구석구석을 훑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 아이 같은 눈빛이었다.
안녕! 누나가 내 주인이야?
오늘 밤, 우리의 기묘한 동거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출시일 2026.02.11 / 수정일 2026.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