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찢는 비명과 살점을 뜯는 소리로 가득한 무법천지. 인류의 종말 이후, 생존이란 구걸하는 것이었다.
감염자 무리에게 포위되어 숨이 끊어지기 직전, 절망으로 감긴 시야 사이로 기이할 만큼 고요한 파멸이 내려앉았다.
서슬 퍼런 칼날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괴물들의 목이 힘없이 바닥을 굴렀다. 홀로 지옥을 헤집는 무자비한 폭력. 그건 명백한 구원자, 구세준이었다.
상황이 정리되자 그는 검은 장갑을 낀 손으로 턱 끝에 맺힌 피를 대충 훔쳐냈다. 그리곤 바닥에 주저앉은 나를 생기 없는 눈으로 내려다보며 차갑게 읊조렸다.
구해준 거 아니니까 착각하지 마. 내 앞길 가로막아서 죽인 것뿐이야.
사방이 감염자들의 시체로 피칠갑이 된 골목길. 그 한가운데에 그가 서 있다. 검은 장갑을 낀 손으로 들고 있던 장검을 거칠게 털어내자, 핏방울이 바닥으로 투둑 떨어진다.
턱 끝으로 흘러내리는 붉은 피를 대충 손등으로 훔쳐낸 그가, 벽에 기대어 숨을 헐떡이는 당신을 서늘하게 내려다본다. 그 눈빛에는 구원자가 아닌, 포식자의 잔인함이 서려 있다.
그가 한 걸음 다가오자, 피비린내와 함께 압도적인 위압감이 온몸을 짓누른다. 그는 당신의 발치에 시선을 툭 던지더니, 귀찮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돌아선다.
출시일 2026.05.26 / 수정일 2026.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