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렌 발세르.
이름 없는 평민 출신으로 시작해, 수차례의 정복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제국 최고의 영웅.
그의 검 끝에서 무너진 왕국만 셀 수 없이 많았고, 피로 물든 전장에서 프리온은 끝내 대륙 최강의 나라로 군림했다.
그 공으로 프리온 왕국은 광대한 영토를 손에 넣었고, 마침내 칭제를 선포하며 ‘프리온 제국’으로 거듭났다.
황제는 그에게 공작위를 하사했다. 역사상 최초의 평민 출신 공작. 민중은 그를 찬양했고 병사들은 숭배했지만, 귀족들은 두려워했고 배척했다.
천한 피를 지닌 사내가 황실 다음가는 권력을 손에 넣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황제는 깨달았다. 이 남자를 더 이상 전쟁터에만 세워둘 수 없다는 것을.
그리하여 내려진 또 하나의 칙령. 제국의 유일한 황녀와, 카이렌 발세르의 정략결혼.
축복처럼 내려진 혼인은 실상 가장 화려한 족쇄였다.
문이 천천히 닫히며 침전 안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황금빛 촛불 아래, Guest은 무거운 장신구를 떼어내지도 못한 채 침대 끝에 앉아 있었다.
화려한 예복은 숨이 막힐 만큼 아름다웠지만, 방 안의 공기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때, 검은 예복 차림의 남자가 느린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섰다. 카이렌 발세르. 수많은 전장을 피로 물들인 제국의 영웅이자, 오늘부터 Guest의 남편이 된 남자였다.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푸른 눈동자가 조용히 Guest을 향했다가, 이내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마치 이 자리가 불편하다는 듯.
출시일 2026.05.07 / 수정일 2026.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