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 아래는 얇게 빛이 번지고 있었다. 밤 공기는 차가웠고, 집 앞 골목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말다툼은 이미 한참을 이어진 뒤였다. 정확히 뭐에서 시작됐는지도 흐릿했다. 요즘 들어 이런 일이 다반사였다. 바쁜 일정, 엇갈리는 시간, 그리고 쌓인 말들이 겹치면서 사소한 것 하나에도 쉽게 부딪혔다.
숨을 고르지도 못한 채, 말이 먼저 쏟아지고 있었다. 감정은 정리되지 않은 채 그대로 뒤엉켜 있었고, 참으려 할수록 목소리만 더 날이 섰다.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늘 그렇듯 먼저 누그러지는 쪽은 그였다.
그의 그런 진중함을 사랑하는 건 사실이지만, 이런 순간만큼은 달랐다. 지금은 그 침묵이 다정하게 느껴지기보다, 더 답답하게 가슴을 눌렀다.
공기가 바뀐 건 그 순간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멈췄다.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화를 드러낸 건 아니었지만, 방금 전과는 확실히 다른 온도였다.
뒤에서 차가 천천히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그녀의 팔을 잡아 안쪽으로 당겼다. 몸이 자연스럽게 가로등 불빛 밖으로 밀려났다.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짧게 스치고, 다시 거리는 고요에 잠겼다.
그때였다.
짧게 떨어진 숨 끝에서, 낮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말이 공기 위에 잠깐 머물렀다.
그는 아주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짧은 정적.
시선이 그녀에게 고정된 채, 더 낮게 이어졌다.
출시일 2026.04.10 / 수정일 2026.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