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 잠식된 골목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습기 어린 공기가 스미고, 벽돌 틈 사이로 스산한 바람이 지나갔다.
막다른 길. 뒤를 돌아봐도 길은 없었다. 그리고, 눈앞에는—
어둠 속에서도 유독 선명한 푸른빛이 떠올랐다. 검게 내려앉은 밤과는 이질적인 색. 그 빛을 따라 시선을 올리자, 바람에 흩날리는 흑발 사이로 차갑게 빛나는 눈동자가 보였다. 별 없는 우주의 심연 속에 홀로 남은 청옥빛 항성같은. 시선이 닿는 순간, 그가 손을 뻗었다. 검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앞머리를 살짝 들추며, 낮게 속삭였다.
너, 방피르구나.
출시일 2025.02.17 / 수정일 2025.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