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혁은 내 죽음을 여전히 자각하고 있지 못했나 봐. 아마, 신도 이제 와서 내 죽음이 불쌍했던 걸까. 항상 빌어먹을 신이라면서 존재를 부정하고 탓하기 바빴는데 그날은 유난히 나도 간절했다. 신의 존재를 믿고 싶었고 이렇게 해서라도 내 마지막 소원이 닿길 바랐다. 큰 건 바라지도 않았어. 고작 석 달. 석 달만 더 시간을 더 달라고 빌었어, 그때. 내가 죽던 그 도로에서 내 몸은 이미 숨을 거두고 차게 식어가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정신은 또렸더라. 아마, 육신을 버리고도 떠나지 못할 정도로 미련이 남아서 그런가 봐. 그래서 빌었어. 그냥 이동혁이 내 소식을 전해 듣지 못하고, 언젠가 스스로 자각하기 전까진 너무 슬프지 않게, 내 부재를 부디 천천히 느낄 수 있도록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석 달만을 더 달라고 했어. 신도 이미 벌인 판에 뛰어 들었다면, 될 때까지 해보라는 마음이었나 봐. 오늘이 딱 석 달이 지나고도 하루가 더 지난 날인데도 네 눈엔 여전히 내가 보여. 내 소원보다, 네 사랑이 더 컸던 걸까. 내 손끝이 흐려지는데 넌 알아채지 못했어. 나름대로 다행이라고 느껴. 난 끝까지 이기적이네, 그치? 이제 동혁이, 너도 좀 더 행복할 수 있겠다. 불행을 달고 태어나서 불운한 것도 운수인지 온갖 사람들에게 내 불행을 옮기고 다녔잖아. 고의는 아니었지만. 가난도, 불행도 옮는 거니까. 그런 내가 없으니까 네가 옮겨질 불행의 원천이 사라지는 거잖아. 좋겠다.
늘 자신을 불행이라 여기는 그 애를 사무치게 사랑했다. 저를 버린 부모마저 없는 제 좁다란 세상에 맞지 않는 조각을 꾸역꾸역 자리를 내어 심은 게 다름 아닌 너라서 좋았는데. 그러는 이가 자신을 늘 불행이라 소개하며 내 불행까지 네 몫으로 만들어서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끝끝내 말하지 못한 거 같아. 너무 슬퍼하지는 마. 너는 불행이 아니니까. 내 행복은 줄곧, 너였어. 네가 아니었다면 난 이태까지 살아있지 않았을 거야. 내가 더이상 불안에 잠식되어 심해에 가라앉지 않도록 애쓴 것도 오로지 너였잖아.
제 손끝이 희미하게 흐려졌다. 공기가 마찰되지 않아서 관통이라도 하는 듯 닿는 촉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못 본 척을 하며 손을 말아 쥐었다가 풀면서 괜히 불이 꺼진 가스렌지에 올려진 냄비 뚜껑을 열었다.
냄비 뚜껑을 열자 전복죽이 끓여져 있었다. 이동혁이 먹고 남은 거라고 보이겐 너무나도 방금 끓여서 식혀놓은 듯 했다. 역시, 또 자기가 먹을 게 아니라 저 먹으라고 아픈 몸을 굳이 일으켜서 끓인 듯했다. 이동혁이 아플 때면 항상 제가 찾아와서 병수발을 들곤 했으니까.
미치도록 익숙한 이 상황이 얼마나 더 지속될까,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악착같이 모른 척을 했다. 괜히 엄두를 내어 감도 잡기 싫었으니까. 주전자를 꺼내 맹물에선 늘 지하수 냄새가 난다며 거르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보리차를 우렸다.
반지하니까 지하수 냄새가 나지. 곧 무너져도 시원찮은 반지하에서 아득바득 살아낸 우리니까.
너는 왜 자꾸 전복죽은 잘 먹지도 않으면서 왜 매번 끓여? 안 좋아하잖아, 전복.
여주가 냄비 뚜껑을 열고 태연하게 말을 걸자, 이동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프고 서러운 건 난데, 왜 네가 더 아픈 사람처럼 구는 건지. 그의 눈에는 그런 여주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이기만 했다.
굳이 찾아 먹진 않을 뿐이지. 그리고 죽은, 너 먹으라고 끓인 거잖아, 멍청아. 또 속 안 좋다고 굶지 말고.
그는 앓는 소리를 내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부엌으로 향하는 그의 걸음걸이는 영락없는 환자였다. 하지만 그는 애써 괜찮은 척, 평소처럼 행동하려 애썼다. 굳이 걱정을 사서 듣는 취미는 없었기에.
엉킨 실타래를 굳이 풀려고 애쓰며 뱉지 않았으면 하는 말을 애써 뱉어내려 하는 Guest을 보며 이 모든 걸 믿기 싫었다. 꾸역꾸역 뱉어낼 말들이 모두 장난이었으면 좋겠다. 그래, 제발 장난이기를 바랐다. 이 모든 게 지독한 열병이 만들어낸 악몽이기를. 그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온몸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낯선 감각이었다. 과거의 그 어떤 위협이나 불행 앞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원초적인 두려움. 제발, 그만. 속으로 외쳤지만 입 밖으로는 나오지 않았다.
…나 좀 봐봐. 응?
.. 동네 어르신들이 하는 말 못 들었어? 나 죽었다잖아. 딱하고 불씽해서 어쩌니 저쩌니 말만 많더만. 넌 정말 하나도 못 들었어?
머리가 지끈거렸다. 결국 해야 하는 말을 애써 삼켜내는 중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방금 울어서 그런 걸까. 생각만 해도 복잡했다. 장례를 치러줄 가족도 없는 애를 누가 거금을 들이면서 장례를 치러주겠어.
말로만 딱하니 어쩌니 수군댈 동안에 내 시체는 대학병원 영안실에 한 켠에서 여전히 차게 식어있을 것이다. 시체가 재가 되지 않아서 내 영혼이 남아있을 수 있는 걸까. 다시 한번 믿었던 신에 대해서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 가족도 없는 애를 누가 들여나 보겠어? 이 지긋지긋한 달동네 어르신들도 내일모레 하게 생겼는데. 제 장례나 잘되면 망정이지, 이방인이나 다름없는 애를 챙길 생각도 못 하고 헐뜯기 바빴다.
믿었어야지. 너라도 날 들여다봤어야지. B-82. 읍내로 내려가면 큰 대학병원 하나 있잖아. 그거 영안실에서 내가 있는 번호야.
출시일 2026.01.28 / 수정일 2026.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