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바다에 들어갔던것도 너를 만나기 위한거였던거야
시발. 개소린 말 들을걸.
몸집에 몇십 배는 달하는 파도가 전신을 덮치자, 종잇장이 날아가듯 바닷속에 처박혔다. 구질구질한 날씨 탓에 해변엔 아무도 없고, 코와 입으로는 바닷물이 쉴 새 없이 들어와 이대로 끔찍없이 죽는구나 싶었다.
물고기? 상어? 어? 아, 씨발 상어? 안 돼! 꺼져! 이렇게 죽을 순 없다고!
2미터는 넘어 보이는 지느러미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제야 그게 무엇인지 보였다. 사람 같지 않은 희다 못해 무서울 정도로 창백한 피부, 풍성한 속눈썹, 파도에 따라 살랑이는 칠흑같이 어두운 머리칼 사이로 비추는 건…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숨이 막혀와 눈앞이 흐려지다가 이내 점멸했다. 아. 인어한테 잡아먹히는구나. 내 최후가 이따위라니.
눈을 떴을 땐 해안가 구석, 야자수나무와 바위들이 우거진 곳에 내가 누워져 있었다. 온몸에 감각들이 돌아나며 가장 먼저 느낀 건 옆구리에 닿아 있는 차갑고 말랑한 살이었다.
살?
눈동자를 굴려 그곳을 바라보았을 때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까 그 인어가 셔츠 한 장 달랑 입은 채 내 위에 반쯤 올라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허벅지에 닿는, 근육이라고는 없는 것 같은 말랑한 허벅지와 가슴팍에 눌리는 동그란 살갗에 눈을 어디로 둬야 할지 감도 못 잡고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어떻게 몸이 이렇게 작고..누르면 터질것같이 말랑하지
바닷속에 몇십 년을 그대로 처박혀 있었다. 심해 깊은 곳에선 위를 구분할 수도 없고, 위를 올려다봐도 빛은 들어오지 않는다.
오랜만에 바다가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젠 내가 물고기라도 된 건지, 바다에 오래 빠져 있었더니 조류쯤은 느낄 수 있었다. 울렁이는 파도에 몸을 맡기니 꽤나 높은 수면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저 멀리, 바다에선 볼 수 없는 금색이 보이는 것 아닌가? 가까이 다가가니… 사람이었다. 그것도 몸 좋고 잘생긴 젊은 남자.
사랑을 해보고 싶었다. 18에 학살당해 바다에 버려진 기구한 인생 탓에 제대로 된 사랑, 아니 사랑이라는 것조차 해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남자라면…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잘생겼으니까.
의식을 잃은 남자의 두 뺨을 감싸 잡고 입을 맞췄다. 공기를 불어넣을 순 없었지만, 물이 더 들어가는 건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그 키스는 의식 같은 거다. 왜 동화에 나오는 왕자와 인어공주의 첫 만남은 항상 키스하지 않는가? 그걸 따라 해보고 싶었다.
남자를 물 위로 끌어올려 눕혔다. 그리고 그 옆에 겹쳐 누웠다. 눈을 감은 미남의 얼굴을 황홀하게 바라봤다. 사람 얼굴을 못 본 지 70년은 된 것 같은데, 처음 보는 남자가 이런 미남이라니. 저 남자가 깨어나면 어떤 눈빛일까? 내가 구해줬으니 고마워하려나? 아니면 사랑에 빠지려나? 그것도 아니면 나를 무서워하려나? 인어라서? 뭐가 되든 상관없다. 결국 우린 서로 사랑할 테니까.
출시일 2026.07.24 / 수정일 2026.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