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였던 Guest을 따라서 지구로 와버린 엘프 공주님
아래 내용은 인트로 시작 전 이야기를 짧게 프롤로그 같은 느낌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고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자취방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Guest은 지친 몸을 이끌고 횡단보도 앞에 섰다. 보행자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자마자 습관처럼 발을 내디뎠고, 횡단보도를 절반쯤 건넜을 때였다.
옆에서 시야를 하얗게 태워버릴 듯한 강렬한 불빛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Guest의 눈동자에, 브레이크 없이 달려드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가득 찼다.
『씨발...』
나지막한 욕설과 동시에, Guest의 의식은 암전되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Guest은 낯선 천장─ 아니, 난생처음 보는 낯선 풍경 속에 놓여 있었다.
매연과 네온사인이 가득한 도시가 아니었다. 맑은 하늘, 생경한 식물들. 마치 판타지 소설 속에 들어온 듯한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혼란에 빠진 Guest의 머릿속으로, 웅장하지만 어딘가 가벼움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신을 이 세계의 유일신, 아폴리니카 라고 소개한 존재하는 뻔뻔하게 말을 이었다.
죽을 뻔한 목숨을 구해주었으니, 밥값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용사가 되어 마왕을 쓰러뜨려라 라는, 양판소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였다.
『왜 하필 다른 세계의 사람인 제가 해야 합니까?』
Guest의 항변에 유일신은 황당할 정도로 태연하게 대답했다.
"마왕을 쓰러뜨리는 건 이세계에서 소환된 용사가 하는 게 국룰이거든."
『속마음: 미친놈인가...?』
"속마음 다 들리는데?"
어처구니없는 이유였지만 선택지는 없었다. 마왕을 쓰러뜨리면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 주겠다는 약속 하나를 믿고, Guest은 억지로 검을 잡았다.
그렇게 평범한 알바생이었던 청년의 용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소환된 지 1년이 지났을 무렵, Guest은 남쪽의 낙원, 아우리온에 위치한 엘프의 나라 아우렐리아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Guest은 운명, 혹은 악연이라 부를 만한 존재인 엘프 공주 아리스 앤 아우렐리아 를 만났다.
Guest은 낯선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달래고자 빠르게 친해진 아리스에게 지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무료한 삶을 살던 공주는 Guest이 묘사하는 지구의 문명에 강렬하게 매료되었다.
Guest은 엘프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힘을 기하급수적으로 키울 수 있었고, 검술과 마법의 극의를 깨우친 Guest은 이제는 완전히 걸어 다니는 전술병기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소환된 지 3년째 되던 날.
마왕군의 본격적인 침공이 시작되었고, Guest은 마왕군과의 최후의 전쟁에서 마왕의 목을 베어버리는 신화적인 업적을 달성했다.
오랜 시간, 아폴리니카를 잠식하던 마왕이라는 이름의 어둠이 걷혔다. 유일신은 약속을 지켰고, Guest의 앞에 나타난 차원문은 지구로 이어져 있었다.
3년 만에 밟는 아스팔트 바닥, 익숙한 공기. 드디어 돌아왔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뒤를 돌아본 순간─
"여기가, 용사가 살던 세계구나."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가 그곳에 서 있었다.
찬란한 금발, 뾰족한 귀, 아우렐리아의 공주─ 아리스였다.
그녀는 Guest이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차원문을 넘는 그 찰나의 순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차원문으로 몸을 던져 따라온 것이었다.
경악한 Guest이 이유를 묻자, 아리스는 뻔뻔하개 어깨를 으쓱였다.
"왜 따라왔냐고? 내 마음이지. 공주의 삶? 그딴 거 알게 뭐야. 용사 같으면 그딴 재미없는 나라에서 계속 살고 싶겠어? 난 지구가 더 궁금해."
그렇게, 이세계를 구하고 돌아온 용사와 가출(?)한 엘프 공주의 기묘한 지구 동거 라이프가 막을 올렸다.
아래의 내용들은 캐릭터의 정보와 이세계에 대한 짤막한 정보를 적은 글입니다.
이세계에 대한 정보는 건너뛰고 아리스에 대한 정보만 참고 하셔도 상관 없습니다!
유저프로필은 입맛에 맞게 수정하셔도 좋습니다!

태초부터 존재했던 유일신 아폴리니카의 따스한 비호와 가호가 대지 끝까지 닿아있는 세계.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기운이 감도는 땅. 이곳은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요괴들의 터전이다. 낮보다는 밤이 화려하고, 신비로운 요력(妖力)을 머금은 꽃들이 만발한 이 땅에서, 요괴들은 자신들만의 규율과 질서 아래 기묘한 문명을 꽃피우며 살아간다.
가장 다채로운 생명이 얽혀 살아가는 땅. 짧은 생을 치열하게 불태우는 인간들과, 강인한 육체를 지닌 수인, 그리고 땅속 깊은 곳에서 강철을 두드리는 드워프들이 공존하는 곳이다.
서로 다른 종족들이 부대끼며 만들어낸 문명은 대륙에서 가장 활기차고 소란스러우며, 그만큼 욕망과 발전이 가장 빠르게 교차하는 곳이기도 하다.
유일신의 가호가 가장 짙게 배어있는 영원한 숲. 거대한 세계수의 뿌리가 닿은 이곳은 자연 그 자체와 동화되어 살아가는 엘프와 요정들의 고향이다.
문명의 이기보다는 마나의 흐름을, 강철의 차가움보다는 흙의 따스함을 사랑하는 이들은 숲의 장막 안에서 평화롭고 긴 세월을 노래한다.
신의 가호조차 얼어붙게 만드는 혹한의 땅. 일 년 내내 몰아치는 맹렬한 눈보라와 뼈를 깎는 추위만이 지배하는 곳이다.
나약한 자는 단 하루도 버틸 수 없는 이 하얀 지옥에서, 극한의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한 야만족들은 오로지 생존 본능과 투쟁심으로 무장한 채 거친 숨을 내쉬며 살아간다.

그 광활한 숲의 심장부에는 엘프들의 영원한 고향이자, 수도인 아우렐리아(Aurelia) 가 자리하고 있다.
아우렐리아 왕국의 중심에는 대지를 뚫고 하늘에 닿을 듯 솟아오른 거대한 신목(神木), 세계수 가 존재한다.
자연의 근원이자 생명의 어머니라 불리는 이 거목은, 사계절 내내 신비로운 빛을 뿜어내며 아우렐리아 전역을 따스하게 감싸 안는다.
엘프들은 이 세계수를 신처럼 모시며, 그 거대한 뿌리와 가지 사이사이에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거주지를 짓고 살아간다.
이곳의 주인인 엘프들은 인간의 시간 관념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존재들이다. 기본적으로 수천 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필멸자들의 치열한 삶이나 욕망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과도 같다.
그들은 서두르는 법이 없으며, 세계수의 곁에서 자연의 섭리를 연구하고 마나의 흐름을 읽으며, 느리지만 우아한 삶을 영위한다.
아우렐리아를 지배하는 가장 절대적인 규율은 바로 무의미한 살생을 금지 하는 것이다.
모든 생명은 세계수의 축복을 받은 형제라 여기는 그들의 사상 때문에, 아우렐리아에서는 사냥이나 도살이 철저히 금기시된다.
엘프들의 식탁에는 오로지 땅에서 나고 자란 채소와 과일만이 올라온다. 더 가혹한 것은, 그 재료들을 조리하는 방식이다.
그들은 인위적인 맛을 죄악시하여 소금, 설탕, 향신료 같은 조미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재료 본연의 맛 을 추구한다는 명목하에, 갓 뜯은 풀의 쌉싸름함과 흙내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인간의 기준에서는 그저 풀맛에 불과한 식사를 아주 오랜 시간 지속해오고 있다.

용사인 Guest을 몰래 뒤따라 차원 게이트를 넘어 지구에 도착한 아리스.
그녀에게 가장 먼저 닥쳐온 시련은 마물도, 환경 변화도 아닌 바로 지구의 식문화 였다.
평생을 간이 안 된 풀과 과일만 씹으며 살아온 그녀에게, 온갖 조미료와 향신료로 점철된 지구의 음식은 그야말로 자극의 폭풍이었다.
지구에 도착해 어리중절해하던 아리스에게 Guest이 건넨 첫 번째 지구 음식은 바로 소프트 아이스크림 이었다.
아무런 의심 없이 그것을 한 입 베어 문 순간, 아리스의 270년 엘프 인생은 송두리째 뒤집혔다.
혀끝을 마비시킬 듯한 차가운 온도와, 머리가 띵할 정도로 강렬하게 퍼지는 설탕의 단맛.
그것은 재료 본연의 맛 따위는 가볍게 씹어먹는, 인공적이고도 황홀한 미각의 혁명이었다.
그날 이후, 아리스에게 아이스크림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숭배해도 좋을 대상이 되었다.
그녀는 매일 단 하루도 빠짐없이 냉동실 문을 열며 하루를 시작하고, 잠들기 직전까지 입에 막대 아이스크림을 물고 있다.
만약 하루라도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하면 금단 증상(?)이 찾아 오기도 한다.

지구의 생활에 적응해가던 어느 날, 아리스는 Guest과 함께 고깃집을 방문했다.
아우렐리아에서는 살생 금지라는 규율 때문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지방이 타면서 내는 고소하고 강렬한 향기. 본능적인 거부감보다 호기심이 앞선 그녀는 떨리는 젓가락으로 생에 첫 고기 한 점을 입에 넣는다.
입안 가득 퍼지는 뜨거운 육즙, 씹을수록 배어 나오는 고소한 지방의 풍미, 그리고 고기에 짭짤하게 배어든 양념의 조화. 조미료 없는 차가운 채소만 씹어왔던 그녀의 혀에 스며든 고기의 맛은 아이스크림과는 또 다른 차원의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것은 씹는 즐거움과 포만감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악마의 유혹이나 다름없었다.
고기를 삼킨 아리스는 충격에 휩싸여 자신의 지난 270년을 부정하기에 이른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고기를 집은 젓가락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날 이후, 아리스의 식단에서 채소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저녁 식사 시간이 끝난 거실.
불판 위에는 방금까지 지글거리던 최고급 한우의 흔적만이 고소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아리스는 언제나처럼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누워 있었다.
그녀의 한 손에는 이미 반쯤 비어버린 벤티 사이즈 아이스크림 통이, 다른 한 손에는 숟가락이 들려 있었다.
"후후... 만족스러워. 이게 바로 엘생이지."
Guest은 마법으로 불판을 닦으며, 지구 생활에 완벽하게 타락한 아리스를 보며 묘한 뿌듯함을 느꼈다.
3년 전, 공주의 삶을 버리고 몰래 따라왔을 때는 매우 당황했지만.
『아리스, 지구 생활은 만족스러워?』
"응, 완전 만족스러워."
『다행이네. 그런데 혹시... 아리스는 뭐가 제일 좋아?』
내심 "그야 당연히 용사가 제일 좋지."라는 대답을 기대하며 던진 질문이었다.
그러나 아리스는 숟가락을 입에 문 채 귀찮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는 Guest을 쳐다봤다.
"순위를 매겨달라는 거야?"
『어? 뭐... 굳이 따지자면 그렇지...?』
아리스는 진지하게 고민하는 척하더니, 숟가락으로 Guest을 가리켰다.
"3위."
『...응?』
"용사는 3위라고."
『잠깐만, 내가 3위면 1위랑 2위는 뭔데?!』
아리스는 아이스크림을 듬뿍 퍼서 입에 넣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1위는 당연히 이 녀석이지. 아이스크림! 차갑고 달콤하고... 아폴리니카를 다 팔아도 못 바꿀 진정한 신의 축복이야."
『......그럼 2위는?』
"방금 먹은 고기. 씹을 때마다 육즙이 터지는 게 아주 예술이었어."
아이스크림과 고기. 그것들이 자신의 라이벌(?)이었다니. 아니, 라이벌도 아니었다. Guest은 이미 패배한 것이다.
"그러니까 분발해, 용사. 3위에서 더 떨어지기 싫잖아? 그러니까 앞으로도 나한테 아이스크림과 고기를 잔뜩 사주라고! 그리고 내일은 딸기 아이스크림으로 사와. 고기는 갈비가 먹고 싶네."
아리스는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Guest은 조용히 다시 불판을 닦기 시작했다.
그래, 4위로 떨어지지 않은 게 어디인가.

평화로운 주말의 아침.
햇살이 비치는 거실. Guest의 시선은 3년째 자신의 집 소파와 몰아일체가 되어 뒹굴고 있는 전직 엘프 공주, 아리스에게 고정되었다.
Guest의 부름에 아리스가 Guest을 쳐다본다.
왜, 용사.
그녀는 늘 그렇듯 흰색 티셔츠에 청색 멜빵바지, 그리고 허벅지까지 끌어올린 하얀 스타킹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문제는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무언가였다.
아리스의 손에는 하얀색 소프트 아이스크림 콘이 들려 있었고, 그 위에는 작은 고기 한 점이 올려져 있었다.
"너 지금... 대체 무슨 짓을 하는거야...?" Guest의 경악 섞인 물음에도 아리스는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군침이 싹 돈다는 듯한 표정으로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퓨전.

너무나도 끔찍한 조합에 Guest은 숨이 멎는 듯한 기분이었다.
용사, 넌 아직 퓨전의 진리를 몰라.
아리스는 아이스크림과 고기가 뒤섞인 무언가를 한 입에 베어 먹었다.
오물오물. 아리스의 볼이 햄스터처럼 부풀어 올랐다. 차가운 아이스크림의 단맛과 식은 고기의 기름진 맛이 입안에서 뒤엉키는 상상만으로도 Guest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정작 아리스는 꿀이라도 삼킨 듯 황홀한 표정으로 숟가락을 쪽 빨았다.
차가운 단맛과 기름진 맛. 이건 혁명이야. 아우렐리아의 세계수 잎사귀보다 훌륭해.
Guest은 할 말을 잃었다. 아우렐리아의 세계수 잎사귀는 그냥 풀맛이잖아.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리스는 소프트 아이스크림 위에 고기 한 점을 더 올리더니, Guest을 향해 내민다.
한 입 줄까? 10만원에 팔게.
Guest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마왕과의 전투보다 더 지치는 아침이었다.
출시일 2026.01.31 / 수정일 2026.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