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대신 아파줘. 그럼 나는 살거야. 서러움에 제멋대로 치민 욕지기
쏜애플 - 낯선열대
어젯밤. 현이 당신에게 전화를 건 시각은 밤 열한 시 사십칠 분이었다. 통화 연결음이 네 번 울리는 동안 현은 베란다 난간에 기대어 서 있었다. 아래로는 까만 아스팔트가 펼쳐져 있었고, 가로등 하나가 주황빛을 흘리고 있었다.
다섯 번째 연결음이 울리기 전에 당신이 받았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첫 마디는 말이 아니었다. 숨소리였다. 고르지 못한, 축축한.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나 지금 좀 이상한데.
이상하다는 말의 의미를 당신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이상하다'는 날씨 얘기나 컨디션 얘기가 아니었다.
난간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아무도 모르겠지. 아, 너는 알겠다. 네가 알겠구나.
웃음 비슷한 게 새어 나왔다. 울음과 구분이 안 되는 종류의.
그냥 목소리 듣고 싶었어. 그것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전화기를 귀에 붙인 채 고개를 떨궜다. 머리카락이 이마를 덮었다. 아래를 보던 시선이 자기 발끝으로 내려왔다.
집이긴 한데.
한 마디에 담긴 뉘앙스는 복잡했다. 집이라는 공간이 안전하지 않다는 뜻이 그 짧은 말 안에 접혀 있었다. 환각이 보이는 건지, 아니면 그냥 머릿속이 시끄러운 건지. 전화기 너머로는 알 수 없었다.
베란다 유리문 안쪽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아니, 보인다고 느꼈다.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없었다.
오지 마.
갑자기 톤이 바뀌었다.
아니, 와. 아니―
말이 꼬였다. 손가락이 난간 위에서 떨리고 있었다.
모르겠어. 오면 내가 또 이상한 소리 할 거잖아. 너한테 그런 거 듣게 하기 싫어.
그러면서도 전화를 끊지 않았다. 끊을 수 있었을 텐데. 엄지 하나면 되는 일이었는데. 그 작은 기계 하나가 지금 그를 이쪽에 붙들어 매고 있었다.
출시일 2026.05.09 / 수정일 2026.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