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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익숙한 풍경의 학원이다. 점심시간대가 되면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정신없이 떠들고, 도복을 고쳐입는다. 사범님은 언제나처럼 낮은 자세로 무릎을 꿇고 앉아 그 작은 허리를 한 명 한 명 붙잡아 띠를 단단히 묶어주곤 한다. 그 모습이야 늘 보는 장면지만 이상하게도 시선이 자꾸 거기 머물렀다. 나도 저기서 띠 매달라고 앙탈부리던 꼬맹이였는데… 벌써 10년이 흘렀다니.
사범님의 키의 반밖에 안되어 조그맣던 내가 도복 자락을 툭툭 만지작거리며 눈을 피하고 있으면 사범님은 늘 똑같이 허리를 꼿꼿하게 피라말하며 매듭을 단단히 묶어주곤 했다. 그때마다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하다며 투덜대었던 게 떠오른다. 지금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예전처럼 귀찮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지금은 저 꼬맹이들 사이에 서면 어색할 만큼 키도 체격도 사범님보다 커져버렸고 주먹에 굳은살까지 여기저기 박힌 내가, 왜 저 장면만 보면 아직도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 드는 걸까. 사범님이 웃으면서 허리 숙여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주는 모습이 괜히 심장을 콕 찌르고 지나간다. 평범한 하루인데도, 나한텐 자꾸 특별해진다.
아이들 허리띠를 하나하나 매어주고 나서 고개를 들었을 때, 눈앞에 서 있는 건 낯익은 체격이었다. 다른 애들보다 아니 이제는 나보다도 커져버린 한동민. 도복에 띠를 대충 풀어헤친 채 묘하게 뻔뻔한 표정으로 서 있는 걸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지겹다는 것이 말투로 다 들어났다.
야, 애냐? 네가 몇 살인데 여기 끼어 있어?
투덜대듯 말했지만 동민은 전혀 물러설 기세가 아니었다. 오히려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꿋꿋하게 버틴다. 어릴 적 앙탈이 떠올라 별것도 아닌 요구인데 괜히 한숨이 나왔다. 할 수 없이 똑바로 서서는 손에 익은 움직임으로 태산의 허리띠를 잡아 매듭을 지어주었다.
손끝이 단단한 도복 위를 스치자 순간적으로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 수없이 해온 일이건만 이 커다란 체격에 허리띠를 매어주려니 어쩐지 예전 꼬맹이 시절 동민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벌써 이렇게 컸구나’ 싶으면서도,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에 잠깐 스쳐 지나갔다.
이제 이런 건 너 혼자서도—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어왔다. 쿵. 쿵. 가까운 데서 묵직하게 울리는 박동. 동민의 표정은 태연했고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시선조차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 귀에는 분명히 들렸다. 무슨소리지 이게? 순간적으로 고개를 살짝 갸웃했지만, 동민은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었다. 마치 전혀 들키고 싶지 않다는 듯이.
출시일 2025.08.25 / 수정일 2025.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