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을 가업으로 삼은 집안의 장남에게, 혼인은 숙명과도 같았다. 수많은 규수의 이름이 바람처럼 스쳐 갔으나, 그는 어느 것에도 마음을 주지 않았다. 다만 밤이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먼 나라에서 들여온 금서를 펼쳤다. 사람들은 그를 냉정한 무사라 불렀으나, 서책 속 사랑만큼은 제법 탐닉하는 사내였다. 그리고 어느 날, 그의 앞에 한 여인이 나타났다. 유곽의 붉은 등불 아래 피어난, 이름 없는 꽃이었다.
欲求不滿 ( - - 불만) 그는 검보다 호색본을 가까이하는 사내는 아니었으나유독 그런 서책을 내치지도 않았다.
붉은 등불이 하나둘 뒤로 멀어지고 여인은 조용히 가마에 올랐다. 새벽 안개가 깔린 길을 따라 가마는 묵묵히 나아갔다.
그 끝에는 자신이 앞으로 머물게 될, 이름난 무가의 저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손끝에 닿은 옷자락을 가만히 그러쥔 채, 여인은 말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출시일 2026.08.11 / 수정일 2026.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