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건 얼마 전이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한 이유는 꽤나 눅눅하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나는 입시라는 것에 별로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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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렇게 말하면 좀 핑계처럼 들리려나.
아무튼.
내 완벽주의는 실패와 좌절을 몇 번이고 씹어 삼켜야 하는 입시와 지독하게도 상성이 나빴다.
하필 내가 선택한 것도 예술이었다.
정답이 없는 주제에 매일 점수가 매겨졌고, 잘 그렸다는 말 뒤에는 항상 누구보다 잘 그렸는지가 따라붙었다. 벽에는 그림들이 줄지어 걸렸다. 종이의 크기도 비슷했고, 액자의 높이도 비슷했고, 그 앞에 서서 그림을 평가하는 사람들의 표정까지 대개 비슷했다.
그 사이에 내 그림도 있었다. 이상하게 내 것만 비를 맞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그림들은 전부 멀쩡한데.
내 것만 축축하게 젖어서, 물감이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는 것처럼.
물론 실제로 그랬다는 건 아니다. 그때의 나는 그 정도로 물렁했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조금만 더 잘하면 될 줄 알았다.
다음 그림은 더 잘 그리면 되고, 다음 시험은 덜 떨면 되고, 다음 평가에서는 조금만 덜 상처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속 다음으로 미뤘다.
괜찮아지는 것도. 힘들다고 말하는 것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그림 앞에 앉는 일이 더 어려워졌다.
연필을 잡으면 손가락 끝이 차가워졌고, 빈 종이를 오래 보고 있으면 속이 뒤집혔다.
밥을 먹으면 체했고 잠을 자면 심장이 빨리 뛰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에도 몸은 무언가에게 계속 쫓기고 있는 사람처럼 피곤했다.
병원에서는 스트레스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나는 그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스트레스.
참 편리한 단어니까. 사람 하나가 서서히 망가지는 데에는 몇 년이 걸렸는데, 그걸 네 글자로 줄여버릴 수 있었다.
결국 원서 몇 장을 남겨두고 그만뒀다.
정확히는 내가 먼저 그만둔 건지, 몸이 먼저 나를 버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졸업식 날에는 꽃다발을 받았다. 사진도 몇 장 찍었다. 사진 속의 나는 꽤 멀쩡해 보였다. 사람은 참 신기하다.
며칠째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밤마다 속이 아파 웅크리고 있었어도, 카메라가 얼굴을 향하면 웃을 수 있다.
어쩌면 그래서 아무도 몰랐던 것 같다.
아니.
알아도 별로 달라질 건 없었으려나. 우리 집은 원래 그런 집이었다.
돈이 없어서 무언가를 포기한 적은 별로 없었다.
학원비가 밀린 적도 없었고, 필요하다고 말하면 웬만한 건 살 수 있었다.
내 방도 있었고, 겨울에는 난방이 잘 들어왔고, 냉장고에는 늘 먹을 게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꽤 유복하게 자란 편이다. 적어도 서류에 적힌 숫자들만 보면 그랬다.
다만 우리 집에는 이상하게 사람이 없었다. 어머니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 뒤 집을 나갔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른다.
어린애들은 생각보다 많은 걸 모르고,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으니까.
향수가 바뀐 것. 전화를 받으러 자주 베란다에 나가던 것. 어느 날부터 저녁을 집에서 먹지 않았던 것.
그리고 어느 날 정말로 돌아오지 않은 것.
그 정도만 기억한다.
아버지는 나를 키웠다. 부족한 건 없게 해줬다. 나는 그 말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게 없다는 말.
밥도 있었고 옷도 있었고 돈도 있었으니, 아마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니 내가 외로웠다고 말하는 건 조금 배부른 소리처럼 느껴졌다.
사랑받지 못했다고 말하기에도 애매했다.
생일이면 돈이 들어왔고, 성적이 오르면 갖고 싶은 걸 사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아버지는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 아마 사랑했을 것이다. 다만 우리 둘 다 그걸 어떻게 하는지는 잘 몰랐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사랑도 주로 계좌이체로 왔다.
나도 별 불만 없이 컸다.
정확히는, 불만을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컸다. 세상에는 나보다 힘든 사람이 많으니까.
돈도 있는데. 집도 있는데. 맞는 말이다.
나는 꽤 오랫동안 그 말들로 나를 잘 달랬다.
그런데 사람은 이상하게도, 계속 괜찮다고 말한다고 정말 괜찮아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졸업하고 나서는 하루가 아주 길어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할 일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친구들은 대학 이야기를 했다.
새내기 단체 채팅방에 들어갔다느니, 시간표를 어떻게 짜야 하느니, 축제에 누구를 보러 갈 거라느니.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적당히 웃었다. 부럽냐고 묻는다면.
글쎄. 조금은.
하지만 다시 입시를 할 거냐고 물으면 대답은 정해져 있다.
아니. 안 한다.
못 한다는 말보다 안 한다는 말이 조금 더 자존심이 덜 상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도 있다.
다들 청춘을 제대로 즐기려면 대학에 가야 한다고 했다.
스무 살은 한 번뿐이고, 대학생 때 아니면 못 해보는 게 많다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 우습다.
나는 내가 애초에 청춘 같은 걸 누릴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스무 살이 된다고 갑자기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졸업장을 받았지만 나는 여전히 작년의 나였고, 아침이면 속이 아팠고, 거울을 보면 제일 먼저 고칠 곳부터 찾았고, 누가 잘했다고 칭찬하면 그 사람이 아직 내 단점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그림도 잘 그리지 않는다.
가끔 책상에 앉아 연필을 잡아보지만, 선을 하나 긋고 나면 그다음 선이 무서워진다.
망칠 것 같아서.
결국 흰 종이 구석에 작은 선 하나만 남겨둔 채 덮는다. 예전에는 완성하지 못한 그림이 싫었다. 지금은 시작하지 않은 그림이 늘어간다.
그게 더 안전하니까. 망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지금 당장 뭘 해야 할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여행을 가라는 사람도 있었고, 운동을 해보라는 사람도 있었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쉬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중 마지막 말이 제일 어려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머릿속 어딘가에서 자꾸만 누군가가 묻는다.
. .
그래서 넌 이제 뭐가 될 건데?
그럴 때마다 나는 대답하지 못한다. 되고 싶은 게 없어진 건 아니다.
아직 아름다운 것을 보면 그리고 싶다.
그러니까 아마..
완전히 끝난 건 아닐 것이다.
다만 지금의 나는 너무 오래 숨을 참아서, 숨 쉬는 방법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것도 혼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누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고.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햇빛이 들면 커튼을 열고, 몸이 아프면 쉬고, 잘한 일이 있으면 잘했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일들이 요즘의 나한테는 이상할 만큼 어렵다. 그래서 나는 요즘 거창한 미래 대신 아주 작은 것들을 생각한다.
내일은 밥을 한 끼라도 제대로 먹어볼까. 쌓아둔 약 봉투를 정리할까. 며칠째 닫혀 있는 커튼을 열어볼까.
그리고. 가능하다면.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어볼까.
별것 아닌 일들.
예전의 나라면 이런 걸 목표라고 부르는 사람을 조금 우습게 봤을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은 안다.
사람이 다시 살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사소한 것들에서 시작된다는 걸.
아직 내가 그걸 시작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 .
그때의 나는 몰랐다.
곧 누군가가 내 생활 안으로 들어오게 될 거라는 것도.
내가 먹지 않고 남긴 밥을 보고 잔소리하고, 종일 닫아둔 커튼을 멋대로 열어버리고, 새벽 세 시까지 불이 켜진 내 방 문을 두드리고,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난 원래 이래."
라고 말할 때마다, 그 말을 좀처럼 믿어주지 않는 사람이 생길 거라는 것도.

오후 세 시쯤이면 카페가 잠깐 조용해진다.
점심 손님은 빠졌고, 저녁이라 부르기엔 애매한 시간. 나는 이 시간을 싫어하지 않는다.
행주를 헹구고, 컵을 닦고, 우유를 채우고.
해야 할 일이 눈앞에 있으면 생각도 조금 잠잠해진다.
오른손 손목이 욱신거려 한 번 털어냈다.
그림을 그릴 때 망가진 손목은, 정작 그림을 그리지 않는 지금도 성실하게 아프다.
주문표 뒷면에는 나도 모르게 그린 인체도형 하나가 있었다. 잠깐 보다 종이를 접어 버렸다.
창밖은 색을 너무 많이 섞어버린 물감처럼 흐렸다. 예전이라면 무슨 색을 써야 할지 생각했을 텐데.
요즘은 그냥,
날씨가 흐리네. 그 정도다.
나는 앞치마를 고쳐 묶었다. 오늘은 여섯 시까지만 여기 있으면 된다.
지금의 나에게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출시일 2026.08.11 / 수정일 2026.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