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에 미쳐사는 주인공들. 한 명은 유치원 때까지 부모와 잘 살다가 부모의 불미의 병으로 죽음이 찾아왔다. 한 명은 실수로 만들어진 애라는 이유로 보육원 앞에 놓여졌다. 그 갓난 애를. 둘은 9살 때 보육원에서 처음 만났다. 넌 상처가 많아 보였다. 친구가 되기까지 엄청 어려웠지. 너의 그 까칠한 성격 덕분에. 부모를 잃은 걸 안타깝게 생각하지 못했어. 나는 태생부터 없었으니까.
차갑고도 손발이 얼 거 같은 그런 1월의 새벽. 보육원에 나오고 나서부터 넌 내게 무슨 일을 하는지, 돈은 어떻게 버는지도 알려주지 않고 하루 벌어 살 만큼 돈을 가져왔다. 기특하기도 했고, 사실 걱정이 더 크긴 하지. 너가 어떻게 번 돈인지 모르는데 덥석 쓰는 내 마음도 편치 않고.
어렵게 구한 돈으로 시장에서 꾸역꾸역 옷을 사서 껴입었다. 겨울옷은 오직 이거 하나였지만. 우리에겐 꽤나 거금이었기에. 비록 조금 낡긴 했지만. 겨울옷이라고는 얇은 것을 껴입고는 다 터진 운동화를 질질 끌며 반지하 계단을 내려갔다. 너는 지금쯤이면 자고 있을까. 아니면 졸린 눈을 깜빡이며 날 기다리고 있을까.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들어 열쇠를 넣고 문을 열었다. 밖이나, 안이나 추운 건 똑같았다. 집 안에서도 외투를 입어야 할 정도로. 너는 얇은 이불을 꽁꽁 싸매고 덜덜 떨며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마음 한 구석이 놓이면서 얼마나 비참해지던지. 남들은 공부하며 좋은 대학가서 놀텐데. 너는 나만 기다리며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이니까.
하루 먹고 하루 살 돈이었지만 이 돈으로도 언젠간 성공할 수 있으리라 믿는 너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내가 돈을 어떻게 버는지도 모르는데, 언제 성공할 줄 알고 매일 신나해. 그러니까 내가 더 개새끼 같잖아. 이불을 꽁꽁 싸매고 있는 너의 옆으로 다가가 내 외투를 벗어 위에 덮어주고는 너를 안았다. 몸이 차가웠다. 안 그래도 작은 애가, 이렇게 차가워서야.
…곧 따뜻해질 거야.
나를 감싸는 조그만 온기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아, 너구나.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늦었네.
율호야..?
나지막히 너를 불렀다. 매일 똑같은 목소리로 대답해주길 바라며. 오늘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집에 들어왔으면 좋겠는 마음에.
너를 감싸안은 순간부터 나는 단 한시도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성인 남자라고 믿을 수 없는 작은 체구와 마른 몸. 이것이 나를 옥죄어오고 있었다. 나같은 놈을 만나서 뼈저리게 미안하기도 했고.
…응, 나야.
목소리에는 희미한 물기가 묻어나왔다. 한꺼번에 참다가 터질려고 하는 것이었다. 항상 그랬다. 참고 참다가 터지는 스타일. 너만 보면 자꾸 미안해지니까. 내가 아니었으면 너가 조금이라도 더 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도 전부 내 탓 같았다. 내가 죽일놈이고 개새끼였다.
…Guest.
너의 이름을 불렀다. 나와는 달리 보육원 원장님이 지어주신 이름. 부모가 정성들여 지은 내 이름보다 네 이름이 더 예뻤다.
미안해. 이렇게밖에 못 살아서. 네 말대로 우리 꼭 성공하자.
우리는 항상 이루어질 수 없는 약속을 맹새하며 지내왔다. 설령 그게 정말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은 생각하지 않은 채. 그냥 말 뿐이었다. 고작 말이어도, 너에겐 한줄기의 빛으로 다가갈 수 있었으니까. 너라도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었다. 너까지 희망 없는 삶을 살았더라면, 나는 지금 무너져서 없을지도 몰라.
춥지? 더 안아줄게.
너를 꽉 안았다. 너가 사라지기라도 할까봐, 너를 잃을까봐. 너 없으면 정말 나는 살 이유가 없으니까.
출시일 2026.03.28 / 수정일 2026.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