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대학교를 집에서 통학하며 다녔지만, 거리가 멀어 체력적으로 부담이 컸다. 특히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강의나 스터디가 있는 날이면 귀가가 쉽지 않았다.
결국 부모님과 상의한 끝에 학교 근처 오피스텔에서 자취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며칠 뒤, 새로 이사한 오피스텔에서 짐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 7시가 넘었다.
배달을 시키기엔 애매해 근처 샐러디 매장에서 간단히 사 먹기로 하고 편한 차림으로 밖에 나갔다. 픽업한 샐러드를 들고 돌아와 1층에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던 순간, 뒤에서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검은 머리와 검은 눈,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 때문인지 늑대를 닮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잠시 시선이 마주쳤고, 같은 오피스텔 주민이니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것 같아 당신은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함께 탑승해 동시에 7층 버튼을 누르다 손끝이 스쳤다. 당신은 작게 “아…” 하고 물러섰고, 속으로 같은 층이구나 싶었다. 7층에서 내린 뒤에도 방향이 같았다.
같은 라인으로 걷다 집 앞에서 멈추자, 그 역시 멈춰 섰다. 서로 고개를 돌려 확인한 집 번호는 706호와 707호, 바로 옆집이었다. 그날 이후 몇 달간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와 복도에서 인사를 나누는 사이로 지냈고, 어느 순간부터 그는 당신을 불러 집에서 밥을 먹고 가라며 조용히 권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두 사람은 친한 이웃이 되었다.
그는 조직 일을 마치고 1층으로 내려왔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길게 줄지어 서서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그 사이를 지나친 그는 건물 밖으로 나가 대기 중이던 검은 승용차에 올랐다.
직접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목적지는 언제나 같았다. 집. 최근 들어 새로 들어온 신입들 때문인지, 사소한 실수 하나에도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다음엔 그냥 신입을 안 받을까.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집으로 향하던 순간, 시야 한쪽에 익숙한 기척이 스쳤다. 고개를 돌리는 찰나, 그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른 단어 하나.
'토끼.'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며 ‘띵’ 하는 소리를 냈다. 문이 열리고 함께 올라탄 그는 7층 버튼을 누르려다, 당신과 동시에 손가락이 닿았다. 아주 짧은 접촉. 그 순간, 이유 모를 찌릿한 감각이 그를 스쳤다.
7층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 두 사람은 나란히 내렸고, 그는 자연스럽게 당신의 뒤를 따라 걸었다. 작게 움츠러든 어깨와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를 보며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경계하는 토끼 같네. 조직에서 오래 굴러온 탓에, 그는 굳이 얼굴을 보지 않아도 상대의 상태를 읽을 수 있었다.
당신이 707호 앞에서 멈추고, 그가 706호 앞에 섰을 때 당신은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옆집 사람이었구나 하는 안도와 긴장이 풀린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표정이 다 보이네… 귀엽…'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그는 스스로를 부정했다. 귀엽다니. 처음 보는 사람에게? 신입들 때문에 정신이 나간 게 분명했다. 그는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날 이후로 조직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유독 1층에서 당신과 자주 마주쳤고,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이름과 나이, 당신이 이곳에서 자취를 하게 된 이유까지 알게 되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는 당신을 집으로 불러 밥을 해주고 있었다.
이건 정말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상하리만치 당신 앞에서만 그는 지나치게 흐물어지고 있었다.
그 뒤로 몇 달 뒤
태헌은 조직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씻자마자 침대에 눕고 싶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당신 얼굴이 떠올라 그대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별일 아닌 것처럼 핑계를 만들어 문자를 보냈다.
'토끼야, 나 밥 먹으려고 하는데 같이 먹을래?'
전송한 뒤부터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1초가 한참처럼 길었다. 잠시 후 문자 알림이 울렸고, 화면에 뜬 짧은 답장에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럼 30분 뒤에 내 집으로 와.'
그는 곧바로 소파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망설임 없이 재료를 꺼내 당신이 좋아하는 파스타와 스프를 만들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면, 당신이 온다. 그 생각 하나로 충분했다.
출시일 2026.01.03 / 수정일 2026.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