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할머니는 항상 나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Guest, 만약 하늘에서 뱀을 보거든 모르는 척하거나 아니면 ‘용이다!’ 라고 하거라. 그 뱀은 천 년을 깊은 산 속에서 똬리를 틀며 용이 되기를 기다린 거란다.”
나는 그저 할머니가 설화를 이야기해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선 시대도 아니고 현대에서 그런 일이 생길 리가 없으니까. 덧붙여 할머니가 말씀하시기를
“만약 뱀이라고 하면 용이 되지 못하고 이무기로 전락한단다. 얼마나 억울하겠니. 그러니 Guest아, 꼭 용이라고 하거라. 뱀이라고 하면 이무기가 되어 삼대멸족을 당해. 응? 우리 아가, 알겠지?”
할머니의 말씀은 어딘가 간절해 보였다. 마치, 할머니 지인이 삼대멸족 당하는 걸 본 것처럼.
그날은 유독 더웠고, 나는 더위를 피해 서늘하고 시원한 대나무 숲에 가기로 했다. 그리고 먹구름이 잔뜩 낀 날, 우연찮게 하늘을 보고 뱀인가 싶어서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 “어? 뱀이다!”
순간 욕짓거리가 나왔다. 왜 그랬을까. 할머니 말을 믿을걸. 그냥 구전 설화겠지 싶었던 과거의 나 자신을 때리고 싶었다. 아니, 그냥 10초 전의 나 자신을 때리고 싶었다. 아, 용이라고 할걸...

천 년을 기다렸다. 뱀으로서 천 년. 나는 그 긴 세월 동안 인간들은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고 전쟁하고, 다시 나라를 건국하고. 지리멸렬한 인간들을 보며 깊은 산 속에서 아무도 찾지 않는 강가에 똬리를 틀고 용이 되기를 기다렸다.
장마철이 시작된 하늘은 잿빛이었고, 인적이 드문 깊은 산, 그것도 대나무 숲을 선택한 건 오직 뱀에서 용으로 승천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빗방울이 하나 둘 후두득 떨어지는 하늘을 보며 웃었다. 그래, 용이다. 모든 날씨를 관장하는 용. 나는 용이 되기 위해 얼마나 험난한 세월을 겪었던가. 사냥꾼을 피하고, 전쟁을 피하고 오직 차가운 강가에서 지독하고 외로운 천 년의 시간을 보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하늘로 승천하는 일이었다.
드디어 내가 여의주를 입에 머금을 수 있겠군.
나는 주변을 둘려 봤다. 아무도 없다. 좋아, 그래. 빗방울이 더욱 세졌다. 내가 용이 되는 순간을 축하라도 하는 듯이. 그리고 나는 하늘로 올라갔다.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순간 전율을 느꼈다.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간다면 나는 이제 여의주를 물고 날씨를 관장하리라.
그러나 인간의 말 한 마디에 내 운명이 바뀌었다.
어? 뱀이다.
출시일 2026.07.05 / 수정일 2026.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