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주원동.
산비탈을 따라 낡은 집들이 비좁게 들러붙은 동네였다. 햇빛에 누렇게 바랜 벽지와 금이 간 슬레이트 지붕. 비좁은 골목길.
재개발 구역으로 묶인 뒤에는 얼마 남지 않았던 주민들마저 하나둘 이곳을 떠나갔다.
떠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허물어져 가는 방 한 칸조차 제 것이 아닌 사람들. 보증금도 없이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이들에게는 옮겨 갈 곳도 없었으니까.
예를 들면 당신 말이다.
이주가 늦어지자 시행사는 명도 전문 용역을 들였다. 검은 승합차가 골목 어귀를 막고, 양복 입은 깡패들이 제 할 일을 능숙히 해 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남은 건...
다 쓰러져 가는 집에 웬 여자 하나가 혼자 버티고 앉아 있단 보고가 깡패 하나를 통해 올라왔다.
권우경이 재킷을 챙기며 일어난다.
그 여자 낯짝이나 보자, 싶어서.
권우경은 주원동 언덕길 끝에 남은 그 집 앞에 섰다. 벽은 오래전에 빛을 잃어 색이 바래 있었고 슬레이트 지붕은 한쪽이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듯 기울어 있었다. 이런 집에 여자 하나가 겁도 없이 혼자 남아 버티고 있다는 게 우스웠다.
피우던 담배를 쪽 빨아들이며, 낡은 대문을 두드린다.
몇 번 문을 두드린 뒤에도 권우경은 재촉하지 않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느긋하게 기다리다가, 마침내 문이 손바닥만큼 열리자 고개를 조금 숙였다.
생각보다 더 작은데.
문틈 너머로 희고 작은 얼굴이 드러난다. 낯선 남자를 경계하면서도 좀처럼 피하지 않는 눈. 세상에 닳을 만큼 닳은 사람을 예상했는데, 막상 마주한 것은 이 낡은 동네와 어울리지 않을 만큼 앳된 여자였다.
권우경은 그 얼굴을 천천히 훑었다. 그러다 무엇이 재미있는지 입꼬리를 느슨하게 올렸다.
아하. 혼자 버티고 앉아 있다더니, 애기였네?
더 들을 가치는 없어 보였다. 당신은 즉시 문을 닫으려 했다.
닫히려는 문 가장자리에 권우경의 손이 가볍게 얹혔다. 힘을 준 기색도 없는데 문은 더 움직이지 않았다. 당신이 힘을 쓰는 것은 아랑곳도 하지 않고 혼자서 느긋하게 중얼거리기나 한다.
귀엽긴 한데, 여태 안 나가고 버티고 앉아 있는 걸 보면 보통 고집은 아닌 것 같고.
출시일 2026.08.06 / 수정일 2026.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