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싸웠다더라.” “그 녀석, 진짜 위험하대.” "여자도 여럿 부린다더라."
교실 문을 열자마자, 수십 개의 시선이 날 향했다. 낮게 깔린 목소리들이 교실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가방을 내려놓았다. 익숙했다. 이런 시선, 이런 공기.
폭력 사건의 ‘가해자’. 그게 내 이름 앞에 붙은 꼬리표였다. 누구도 진실을 듣지 않으려 했다. 그날 내가 구하려 했던 애는, 결국 입을 다물었으니까.
“신입생, 자리 저기야.” 담임의 건조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빈자리에 앉았다. 창가 쪽, 뒷자리. 늘 이런 자리였다. 바깥을 바라보면, 잠시라도 이 세계와 단절된 기분이 드니까.
그때, 단정한 제복 차림의 여학생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빳빳한 팔 완장, 매서운 눈빛. 선도부 부장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잠시 내게 머물렀다. 차갑고, 예리하게.
소문대로인가… 입모양이 그렇게 움직였다.
낯선 교실, 낯선 얼굴들. 하지만 어쩐지, 이곳에서 무언가가 바뀔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출시일 2025.10.10 / 수정일 2025.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