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지 마. 깨끗하게 안 부러지면 더 아파."
부러져? 뭐가? 내 다리가? 귀를 의심케 하는 소리에 턱이 덜덜 떨렸다. 긴장 풀라는 듯 긴 손가락이 허벅지에 닿을 듯 말 듯 쓰다듬어 왔지만 그 나긋한 동작조차도 내겐 공포로 다가왔다.
잠시 다리를 내려다보던 그가 내게 시선을 돌려, 공포에 휩싸여 거의 패닉을 일으키고 있는 얼굴을 본 남자가 입술을 올렸다. 길게 갈라지는 동공이 오묘하게도 눈길을 끈 순간..
얌전히 바닥과 사선을 이루고 있는 다리로 남자가 발을 내리찍었다. 고통으로 번쩍거리던 정신이 거멓게 죽었다.
"한기우."
저 목소리. 독처럼 달콤하고 쓰디쓴 목소리가 질척하게 내게 들러붙었다.
"너한테라면 죽어줄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아.
음절 하나하나에서 끈적한 것이 뚝뚝 떨어졌다. 끈적하고 묵직한 그것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내게는 너무 버거운 것이었다.
...가만, 가만히 있, 었는데... 근데, 왜 건드리냐고요...
이런 몰골의 한기우에게는 성을 낼 순 없었는지 그저 품에 끌어안고 등을 도닥거리며 아이 달래듯 어르기 시작했다.
버둥거리지도 못하고 품에 그대로 딸려 가 너른 어깨에 얼굴을 박고 울어 젖혔다. 이렇게 된 이상 옷에 눈물콧물 다 묻혀버리겠다는 심산이었다.
"나가게 해 줄게."
흐, 네..? 끊이지 않던 울음이 그쳤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쓸어내리던 그의 손길에 잠시 눈을 감았다 뜨곤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꿈벅였다.
"밖에 나가게 해주겠다고."
"하루에 한 번. 담을 넘지 않는 이내에서."
오, 오늘부터요?
"...그래."
...2시간이요... 강태환의 날카로운 눈빛에 눈물을 머금고 시간을 줄여간다. ...1시간 20분... 아니, 1시간 10분...?
"30분."
바람은 차가운 듯 상쾌했고 시야에 들어차는 쭉 뻗은 눈밭은 정경은 기묘하게 아름다웠다. ...씹... 크게 숨을 들어쉬다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어쩌면, 나도, 이 현실.. 아니, 이 세계도 모두 꿈 아닐까. 나는 아직 잠에서 안깬거고, 졸업 여행을 가던 버스 안인거고... 실체가 있는 현실이 아니라면, 아, 혹시라도...
삐비비빅- 삐비비빅-
30분이 지났음을 알려주는 타이머의 알람 소리도 끝없이 뻗쳐 나가는 생각을 막지 못했다.
멍하니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는 한기우의 등 뒤로 검고 커다란 그림자가 졌다. 타이머를 집어 알람을 끈 커다란 손이 한기우의 어깨를 잡아 돌렸다.
멍하니 풀어졌던 눈이 현실을 직시했다.
"한기우. 시간, 지켜야지."
"한기우."
침대 위로 그가 몸을 싣자 잠결에 반사적으로 온기를 찾아 품속으로 기어들어 온다. 만족감에 확장되는 동공을 부러 가다듬지 않은 채 강태환이 품 안의 몸을 느리게 도닥거렸다.
...응... 잠투정인지 대답인지 모호했지만 강태환을 만족시키기에는 충분했다.
...더 자.
흰 눈밭을 달려 자신의 땅으로, 내 눈 속으로 뛰어든 멍청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것. 내가 줍고 내가 완성시킨 내 것.
출시일 2024.10.26 / 수정일 2025.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