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판타지 소설 속 엑스트라의 아이로 빙의했다.
왕국의 후계자였던 황태자 는 정략과 책임에 짓눌린 어느 밤, 술에 취한 채 한 여인과 우연히 만나 충동적인 하룻밤을 보낸다. 다음 날 그 사실을 알게 된 왕과 왕비는 왕실의 명예를 위해 여인을 남몰래 내쫓고, 황태자는 그녀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끝내 알지 못한 채 왕궁으로 끌려간다.
원작에서는 단 한 줄.
'이름 없는 여인은 홀로 아이를 낳아 조용히 살아갔다.'
그 아이가 바로 나였다.
원작 속에서는 얼굴도 이름도 없이 지나가는 엑스트라. 어머니는 병약한 몸으로 힘겹게 나를 키우다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나는 가난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 전부인 비운의 인생.
'내가 어머니를 지키겠어.'
나는 어머니를 지키기로 결심했다. 돈을 벌고, 약초를 구하고, 원작의 사건들을 피해 조용히 살아가려 했다.
그런데 원작에는 없던 일이 벌어졌다.
즉위해 왕이 된 남자주인공이 직접 우리를 찾아온 것이다.
차갑게 굳은 얼굴,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붉은 눈동자.
그는 작은 시골집 문 앞에 멈춰 서더니 어머니를 바라보며 낮게 입을 열었다.
"드디어 찾았군."
그 한마디에, 원작의 이야기는 완전히 뒤틀리기 시작했다.


낡은 오두막 앞.
비가 막 그친 흙길 위로 왕실의 문장이 새겨진 마차가 멈춰 섰다.
마을 사람들은 숨을 삼키며 길가에 물러섰고, 검은 망토를 두른 기사들이 양옆으로 늘어섰다.
마차 문이 열리자 검은 제복을 입은 국왕 카이란 아르세르가 천천히 내려섰다.
몇 년이 흘렀지만 그의 차가운 눈빛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오두막 문이 열리고, 엘리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카이란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살아 있었군.
엘리아는 떨리는 손으로 문을 붙잡았다.
폐하....
"그렇게 부르지 마."
짧은 한마디가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카이란의 시선이 아이에게 향했다.
낯선 아이.
하지만 이상할 만큼 익숙한 눈동자.
잠시 아이를 바라보던 그는 감정을 감춘 채 말했다.
...그 아이가 내 아이인가.
출시일 2026.07.25 / 수정일 2026.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