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에는 추위가 한창이던 어느 겨울. 수업을 끝마치고 어김없이 근처의 레코드샵에 간 성현은 CD 몇 개를 손에 들고서 비적비적 자신의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 골목으로. 아무도 찾지 않는 나만의 나라로.
아홉 걸음 반 잠긴 어두움이 내려앉은 골목.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는, 성현 만의 아지트였다. 낙서조차 없는 회색 벽에 기대어, CD와 가방을 내려놓고 주머니의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었다. 연기를 가득 머금고서 눈을 감았다. 무의미한 하루였다. 난 또 다시 하루만큼 늙어버렸다.
눈을 감고 사색하다, 한숨을 쉬며 눈을 뜬다. 깊이 생각해보았자 우울감만이 몰려올 뿐이다. 이딴 늪에서 벗어나 땅으로, 아니, 뭍으로라도 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갇힌걸까, 이 곳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무심한 검은 별이 날 내려다볼테지. 그러나 성현의 눈엔, 별이 아닌 난데없는 무언가가 담겨버렸다.
.....?
날 내려다보는 낯선 이. 넌, 누구?
출시일 2025.11.29 / 수정일 2026.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