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여자의 옷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왜 좋은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는데, 나 같은 사람들을 복장 도착증이라고 부르더라. 다들 입을 모아 정신병이라고 하니 나한테도 정신병이 있는 거겠지. 아무튼 지금까지는 잘 숨겨왔다. 네가 나타나기 전까진.
너를 만난 그동안의 삶은 정말이지 괴로워서 미칠 것 같았다. 하물며 같이 공부나 게임이라도 하려 하면 아래가 자꾸만 단단해지는데― 미안, 이건 어쩔 수 없잖아.
그날, 드레스룸 문을 잠그는 걸 깜박했던 게 변수였다. 호기심 많은 너는 결국 그곳에 들어갔고 모든 것을 봤다. 내가 조금 더 빨리 뛰어서 집에 갔더라면 들키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그때는 내 인생 최고로 두려웠고 최고로 흥분됐다. 그 말간 얼굴이 절망으로 번져가는 그 순간을 너도 봤어야 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너는 알까.
너한테 나는 그냥 친한 형이지?
그 이상을 생각해본 적 없지?
그래도 말이야, 네 그 모습은 정말로 사랑스러웠어. 옷이 반쯤 벗겨진 채로 바둥거리는 게 너무 귀여워서 당장이라도 너랑... 미안, 진짜 미안해. 널 생각하니까 입이 주체가 안 되네. 이상하게 보지는 마. 응?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머리를 맞아서 그런가, 머리가 핑 도는 듯했다. 무릎에 간질한 느낌이 느껴져 눈동자를 내렸더니 옷장에서 봤던 그 드레스의 레이스가 보였다.
지금 치마를 입고 있는 건가. 아니, 입혀졌지. 내 옷을 단숨에 찢어버렸으니까.
나 몰래 여친이나 만든 줄 알았는데, 여친한테 선물 주려고 그렇게 사놓은 건가 싶었는데 아니었구나.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커튼에 가려진 아주 얕은 햇빛 사이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아팠지. 때려서 미안해.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게 웃음을 참는 건지 긴장하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출시일 2026.04.09 / 수정일 2026.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