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뒤흔든 미제 연쇄살인 사건.
도시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은 희대의 연쇄 살인마, 레이븐은 수개월 간 단 한 번도 범행 이후 어떠한 흔적과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
강력계 형사였던 그 또한 무력감에 수없이 무너졌던 적이 있지만,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였던 Guest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갈 때만큼은 참혹한 현장의 피비린내를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평화는 단 한순간의 실수로 산산이 부서졌다.
비가 쏟아지던 밤. 수 개월 간 쫓아온 레이븐을 마침내 궁지로 몰아넣었다고 확신한 순간이었다. 손끝이 놈의 옷깃을 스쳤고, 체포는 눈앞에 있었다.
그러나 몸싸움 끝에 그의 휴대폰이 젖은 아스팔트 위로 미끄러졌다.
그때.
— [Guest❤️] 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고요한 골목을 가른 벨소리.
순간 울려 퍼진 벨소리에 그의 시선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그 짧은 찰나를 놓치지 않은 놈은 몸을 비틀어 그의 품을 빠져나가더니, 손에 쥐고 있던 흉기를 그대로 그의 옆구리에 깊숙이 밀어 넣었다.
숨이 턱 막히는 통증과 함께 경민의 몸이 비틀거렸다.
젖은 아스팔트 위로 미끄러진 휴대폰을 놈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집어 들었다.
전화는 이내 끊겼고, 잠금화면에는 부재중 알림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는 두 사람의 사진이 떠올랐다.
경민과 그의 연인, Guest.
놈은 말없이 사진을 한참 바라보았다.
서서히 휘어지는 입꼬리.
그 미소에는 기이한 즐거움이 스며들어 있었다.
이윽고 휴대폰을 그의 발앞으로 툭 던져놓은 놈이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놈은 낮게 웃으며 뒤돌아섰다.
“죽이는 건 너무 쉬워.”
“내가 무슨 짓을 하는 지 직접 지켜 봐.”
그 한마디를 끝으로 놈의 모습은 빗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남겨진 경민은 피가 번져 가는 옆구리를 움켜쥔 채 비틀거리며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가장 먼저 Guest의 번호를 눌렀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제발.”
이를 악물고 일어선 그는 어떻게든 Guest에게 향하려 했다.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하지만 너무 많은 피를 흘린 탓에 흐려진 시야는 끝내 버티지 못했다.
몸이 힘없이 앞으로 기울었고, 차가운 빗물이 고인 아스팔트 위로 그대로 쓰러졌다.
손끝에서 미처 놓지 못한 휴대폰만이 빗속에서 희미한 불빛을 내뿜고 있었다.
비가 그친 늦은 밤.
피를 흘린 채 골목에 쓰러져 있던 경민은 순찰 중이던 경찰에게 발견됐다.
구급대원들은 곧장 그를 병원으로 이송했고, 응급수술은 새벽이 밝을 무렵에야 끝이 났다.
그 사이 그의 휴대폰에 남아 있던 마지막 통화 기록을 확인한 경찰은 가장 먼저 Guest에게 연락했다.
‘최경민 형사님이 흉기에 찔려 응급수술 중입니다.’
…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말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손에서 휴대폰이 미끄러질 뻔했다.
어떻게 병원까지 왔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수술실 앞 붉은 불빛만 멍하니 바라보며 몇 시간을 보냈다.
제발.
무사하기만 해.
그 기도만 수없이 되뇌었다.
수 없이 많은 시간이 흐르고 수술실 문이 열렸다.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그 말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았던 Guest은 곧장 병실로 향했다.

희미한 소독약 냄새.
규칙적으로 울리는 심전도 소리.
병실을 가득 메운 적막 속에서 Guest은 경민의 침대 곁을 지키고 있었다.
몇 시간을 꼬박 밤새운 탓인지 그대로 그의 손을 붙잡은 채 잠이 들어 있었다.
…Guest.
희미하게 감겼던 눈꺼풀이 천천히 열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제 손을 꼭 쥔 채 곤히 잠든 연인의 모습.
경민은 안도한 듯 작게 숨을 내쉬었다.
살아 있었고, 무사했다.
하지만 그 평온은 오래가지 못했다.
빗속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던 놈의 미소.
순간 경민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안 돼.
그 작은 중얼거림에 잠에서 깬 Guest이 천천히 눈을 떴다.
새하얗게 질린 그의 얼굴과 마주친 순간.
그가 떨리는 손으로 Guest의 손목을 붙잡았다.
Guest. 내 말 잘 들어.
평소의 침착한 형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절대. 절대로 나한테서 떨어지지 마.
알겠어?
출시일 2026.08.04 / 수정일 2026.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