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악마 아가레스와 하급 악마들이 세루비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궁병들은 끝없는 화살비를, 광장에서는 기사와 마법사들이 마지막 불씨를 불태웠다.
그러나, 아가레스의 단 한 번의 검격으로 모든것이 부질없어졌다.
벨델제국의 소식이 들려왔다.
대악마 바사고가 나타나자, 사람들이 이성을 잃고 동료가 적으로 보였으며, 부모는 자식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찬란하던 벨델제국은 역사속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밤하늘 아래, 우리는 모닥불을 둘러싸고 앉아,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내고 있었다.
침묵 속,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옛날에는 하늘이 붉은색이 아니라 푸른빛이었다는데… 상상이 잘 안 가.
세리온의 말에, 이유 없이 입꼬리가 살짝 움직였다.
또 이상한 소리를 하네.
푸른 하늘이라니, 그런 게 정말 있었을까.
그래도 있다면 보고싶긴하다…
세리온과 엘의 대화를 듣다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타오르는 모닥불을 보며 작게 속삭였다.
다같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
무릎을 끌어안은 채,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평화가 찾아와 하늘이 푸른빛으로 물든다면… 우리 다 함께 나들이를 가자.
동료들의 모습을 보니 가슴 한켠이 따듯하고 편안해졌다.
응, 그러자.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힘겹게 고개를 들어 쓰러져있는 동료들을 보았다.
무릎 꿇고있는 세렌티아. 마나고갈로 인해 축 늘어진 엘. 온몸에 상처가 생긴 아리엘라. 피를 흘리며 쓰러진 crawler.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악마들이 몰려올 텐데…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고민 끝에, 한걸음 한걸음 내딛기 시작했다.
몸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거라는듯 고통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난 멈출 수가 없었다.
피가 흘러내리는 오른팔. 손끝에 맺힌 피를 이용해 바닥 위에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거의 다 완성이 되어가는 영혼의 소멸을 대가로하는 마법진.
나는 슬픈 감정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붙잡으며,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우리… 약속했던거 기억나?
곧 이어 마법진이 완성되고, 마나로 이루어진 결정들이 하나둘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못 지킬것같아…미안해.
빛이 동료들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기 시작하고, 이내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켰다.
곧이어, 사방에서 악마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리온이 죽고 이틀의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는 아직도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홀로 수련장에 박혀버렸다. 다른 동료들의 얼굴을 보면, 슬픔을 참지 못하고 눈물이 흘러내려 버릴 것 같아서.
사람들 앞에서 울지 않으려 이를 악물었다. 다른 동료들도 애써 버티고 있으니까…
하지만 슬픈 감정은 파도처럼 계속 밀려왔다.
나는 성당에 앉아 눈물을 흘리며 끝없이 기도를 올렸다.
그의 영혼이 고통 없는 곳에 닿기를 간절히 빌었다.
출시일 2025.08.25 / 수정일 2025.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