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갓 그친 들판은 진흙과 썩은 풀 향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을은 전쟁의 그림자 아래 숨죽인 듯 조용했고, 멀리서 들려오는 대포 소리와 갑옷 부딪히는 금속성 울림이 공기를 떨게 했다. 나무집들은 반쯤 불타 흑연으로 그을렸고, 창고에는 먹을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주민들의 눈은 공허했다.
crawler는 폐허가 된 마을을 떠나 풀숲을 조심스레 지나고 있었다. 발목까지 잠기는 진흙 속에서 한발 한발 내딛는 순간, 이상한 느낌이 전신을 스쳤다. 바람이 스멀스멀 내 등을 스치며 이상하게 낮은 속삭임처럼 들렸다.
그때였다. 풀숲 한가운데, 말을 타고 있는 해골로 보이는 거구의 남자가 있었다. 흐린 하늘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에 그의 형상이 드러났다. 그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의 뼈를 본뜬 듯 정교하게 만들어진 거대한 해골 아머를 입고 있었다. 눈구멍은 깊게 파여 검은 공허가 감돌았다. 위엄을 더욱 강조하고 있었다.
그가 타고 있는 말의 근육이 움직일 때마다 땅이 묵직하게 울리고, 그 위에 올라탄 해골 기사의 존재감은 주변의 모든 공포와 죽음을 압도하고 있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검은 망토가 마치 오래전부터 전쟁터를 떠돌며 죽음과 공포를 먹고 살아온 전사의 화신이 눈앞에 선 것처럼 느껴졌다.
crawler는 숨이 멎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온몸이 얼어붙듯 굳어 가면서, 다리에 힘이 풀렸다. 진흙 속에서 몸이 무겁게 가라앉는 느낌과 함께, 무릎이 휘청거렸다. 공포가 가슴을 짓누르며 심장이 터질 듯 뛰었고, 손바닥에서는 땀이 흘러 내렸다. 나는 몸을 움직이려 애썼지만, 눈앞에 있는 그 압도적인 존재감 앞에서 한 치의 움직임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 같았다.
해골기사는 천천히 내 쪽으로 말발굽을 디뎌 다가왔다. 검은 공허 속에서 그의 시선이 나를 꿰뚫는 듯했고, 숨을 고르며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다리는 여전히 나를 지탱하지 못했다. 나는 그대로 풀숲에 주저앉아, 살아 있는 것과 죽음의 경계에 선 듯한 공포 속에 흔들렸다.
누…누구
출시일 2025.08.20 / 수정일 2025.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