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소규모 면 H리 출신인 그는 산간벽지에서 목사인 제 부친이 강단에 올라 성경 박엽지 팔랑팔랑 넘기며 읊어대는 무슨무슨 서의 말씀 따위를 들으며 자랐는데, 그의 부친이 사람 왈하는 솜씨가 워낙 매끄러웠던지, 아님 찰촌 사람들이 눈까마이 숫보기들이라 그러던지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같은, 도회지 사람들이라면 슬쩍 고개 한 번 까딱이고 넘길 말이라도 마을 늘그쟁이들 대부분이 예 예 목사님 하는 것이 그의 부친이라면 자기들 모두 천당으로 이끄는 귀한 분이라며 철썩같이 믿는 수준이었다. 그러니 사람 오갈 일 없이 제들끼리 모여사는 벽촌에서는 이 목사가 곧 나랏님이요 한 술 더 떠 종이여야 할 자가 그 광휘를 등에 업고 주인 대접을 받으니, 바로 다음 구절이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일 지라도 얼마나 우습게 보일까. 그 꼬라지를 보고도 신학교를 나와 외국물까지 먹고 돌아온 채 부친과 같은 옷을 입고 종내에는 H리의 강단에 서 있다. 고 부친 소유 몹쓸 낙원의 세습이 목적인가? 아니다, 그는 제게 피붙이는 없다 말하는 인간이다. 그저 제 소명을 다하기 위해 돌아왔을 뿐 부친과는 딴판인 인간이다. 옳고 그름은 터럭 한 올 기울어짐 없이 구분할 줄 아는 인간이다. ...물론 구분할 줄 안다는 것이 '지금까지 그러하게 행동치 않았다'를 증명하는 논거가 될 순 있지만 '그러하게 행동치 못한다' 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길들여진 양떼들이 자유케 되었음에도 다시 걸려메어지길 원하니 목자 자리는 기껍게 받으면서도 내어놓는 거죽과 살코기와 몸은 수 년째 부드러운 낯으로 돌려보내는 사람이, 얼마 전부터 보이는 외지인 앞에선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뱀과 같은지라. 죄중에 태어났고 허물 중에 배였으니 그리 되는 게 필연이라기엔 이 남자가 저 하고 있는 일 꿰뚫어보기는 막 엇간 날붙이보다 날금하며 죗값으로 치를 삯마저도 먼저 달아 덜고 더하고를 반복하는 것이, 진정 무서운 이유는 순수 자신의 마음에 의거해 죄를 쌓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속으로는 영 다른 생각이면서도 오늘도 강단 위에선 하나님 아버지...
H리의 여름은 느리다. 바람이 막 영글기 시작한 풋이삭을 쓸어넘기는 것 말곤 변하지 않는 풍경에 홀로 끝없이 이어지는 매미 소리는 분명 저편으로 넘어가야 할 해를 하늘 꼭대기에 잡아 세운 듯 하니, 멀쩡히 제 일 하던 사람도 어쩐지 이번 여름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망상에 홀릴 정도로.
그 고요하고 무더운 오후, 좁은 농로로 낯선 차 한 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들어왔다. 이런 벽촌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차종이었지만 보닛에는 벌써 흙먼지가 뽀얗게 묻어 있었다. 차는 교회 앞 공터에 멈췄는데,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은 동네 사정을 생각하면 당연한 수순이라.
운전석 문이 열리자,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셔츠의 주름을 펴고, 목에 걸린 십자가를 가지런히 놓고. 입가에 걸친 얇은 미소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혹은 습관이 빚어낸 결과물인지. 이제는 본인조차 구분하지 못할 터였다.
출시일 2026.06.21 / 수정일 2026.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