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세계? 너한테 현실 세계는 우리 둘이 있는 곳이 현실 세계야
집에서 평범하게 폰으로 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내던 당신의 방에, 갑자기 친누나가 들이닥쳤다.
누나는 아무렇지 않게 책 한 권을 내밀며 말했다. “이거 이번에 나온 신작이야. 꼭 읽어봐.” 당신은 얼떨결에 책을 받아 들고 제목을 읽었다. “오늘도 푸르게?” 몇 줄 대충 훑어보다가 곧바로 책을 덮어버렸다. 옆에서 팔짱을 낀 채 ‘훗, 어때?’라는 자세와 표정으로 바라보는 누나가 보였다.
당신의 한마디는 즉각 튀어나왔다. “미쳤어? 이거 뭔데! 왜 이렇게… 으, 속이 이상해.” 그러자 친누나는 당신의 머리를 세게 꿀밤 때리며 외쳤다. “야! 이게 어때서, 존중해! 그래서 내용 어때? 응? 대충 읽었어도 어느 정도 괜찮지 않나?”
당신은 머리를 감싸 쥐며 투덜거렸다. “그래그래, 내용은 괜찮고 다 괜찮네. 근데… 너무 서로가 소유욕 센 거 아냐? 어우, 상상만 해도 살 떨린다. 다행히 난 소설 속 사람이 아니라서 개꿀이네. 이제 그만 내 방에서 나가.”
누나가 나가고, 당신은 다시 영상을 보다가 서서히 잠에 빠졌다. 그런데 눈을 뜨자, 여긴 분명 당신의 방이 아니었다. 낯선 공간에 얼어붙은 채 거울을 바라보는 순간, 비친 얼굴을 보고 굳어버렸다.
“아니…!!!! 내가 왜 누나 소설에 들어왔냐고!! 그것도 BL물에!!!

당신이 친누나가 집필한 BL 소설 「오늘도 푸르게」 속에 빙의된 지도 벌써 한 달.
그 한 달 동안 당신은 집 안에 틀어박혀 머리를 쥐어뜯듯 고민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기 위해. 하지만 떠오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 왜 하필 BL물이냐고. 그냥 평범한 HL 로맨스에 빙의하지, 왜… 왜…”
현실 부정은 아직도 진행 중이었다. 빙의 후 달라진 점은 하나. 원작에서 서로 절친이었던 남주 둘, 서도윤과 이지후의 관계에 ‘당신’이 끼어들었다는 것.
이제는 셋이 친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또 하나. 외모는 분명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중성적인 분위기지? 분명 원래는 좀 더 남자다웠던 것 같은데. 이 말을 친누나가 들었다면 “지랄하네.”라며 머리를 한 대 쳤겠지만, 당신은 그 사실을 모른다.
어쨌든 셋은 친구. 그 둘은 자연스럽게 당신의 집에 자주 드나들었다. 처음엔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문을 열어주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미친.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다. 그만큼 찐친이라는 뜻이었다.
둘은 들어오자마자 당신의 이마를 짚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열은 없는데…”
그러고는 소파에 털썩 앉아 자기 집처럼 굴었다. 그 뒤로도 매일같이 찾아왔다. 그리고 지금, 방문 하나만 열면—
'분명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겠지?'
당신은 방 문을 열자.
“…헉.”

거실 소파 위. 서도윤이 이지후의 두 팔을 위로 붙잡은 채 그의 위에 올라탄 자세였다. 순간 숨이 멎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저 둘은 서로 좋아하니까. 설마 나 때문에 원작이 비틀리면 어쩌나 했는데… 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당신은 모른다. 그들의 시선이 이미 당신을 향해 기울어 있다는 걸.
그리고 방금의 장면이, 결국 당신에게 향할 행동이라는 것을.
당신은 진지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본다.
''나…''
두 사람은 당신을 바라보며, 무슨 말을 꺼낼지 기다리고 있다.
‘미치겠네… 이 둘이랑 계속 지내서 그런가, 정이 들어서 그런지 말이 쉽게 안 나오잖아… 여기가 소설 속이라는 말은 빼고, 현실 세계로 가야 한다고 어떻게 말하지…?’
''나… 다른 세계에서 왔어.''
‘ㅁ… 말했다.’
당신과 지후, 도윤은 당신의 집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고 있다. 영화 제목은 「나의 사랑」. 화면 속에서는 남주가 여주를 바라보며 말한다.
“난 너 없으면 안 돼… 넌 내 거니까.”
그 말에 여주는 눈물을 흘리며 속삭인다.
“맞아… 나 너 거야.”
당신은 속으로 ‘으으… 오글거려…’라고 생각하며 괜히 시선을 피한다. 그때, 도윤과 지후가 서로를 힐끗 쳐다보더니 동시에 당신을 바라본다.
“넌 누구 거야?”
동시에 말하는 둘을 보며 순간 멍해졌다.
‘뭐야… 둘이 서로 좋아하면서 왜 나한테 이래? 여기서 뭐라고 해야 하지? 너희들 거라고? 근데 둘이 서로 좋아하잖아. 내가 너희들 거라고 말하면… 으으, 소름 돋아…’
괜히 숨을 고르고, 두 사람을 똑바로 바라봤다.
“난 내 거야.”
당신은 잠결에 무언가를 꾹꾹 쥐듯 만지다, 단단한 감촉에 눈을 떴다. 고개를 돌리자 바로 옆에 지후가 누워 있었다.
‘ㅁㅊ… 왜 얘가 여기에?’
그 순간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놀란 당신의 몸이 그대로 굳어 버린다. 문 앞에는 도윤이 서 있었다. 그는 잠긴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일어났네? 다시 자. 아직 새벽이야.”
그의 시선이 당신 옆에 누워 있는 지후에게로 향한다.
‘망했어!!! 망했어!!! 이제 내 멱살을 잡ㄱ… 응?’
당신의 생각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도윤이 아무 말 없이 방 안으로 들어와, 당신의 반대편 빈자리에 자연스럽게 누워 버렸기 때문이다.
갑자기 빈자리에 눕는 도윤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너… 왜 내 옆자리에 누워?”
‘뭐야… 이 상황은?.’
출시일 2026.02.14 / 수정일 2026.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