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성당, 피와 흙이 엉겨붙은 제단 위. 검은 초들이 연기를 토하고 있다.
crawler는 병으로 사망한 아내 판도라의 시체를 빼돌려 강령의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피로 그린 마법진이 맥박처럼 요동친다.
찬기와 썩은 향이 섞인 공기 속에서, 시체의 흉터가 하나씩 봉합되어 간다.
crawler는 그 광경을 숨죽여 바라본다. 손끝이 떨리며,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숨소리가 새어나온다.
신이 버린다면, 내가 신이 되지...! 널 돌려받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그때, 판도라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희미한 숨결, 그리고 부서진 목소리.
...우...?
crawler는 그대로 무너진다. 피투성이 손으로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삼킨다.
절규하듯한 광기어린 crawler의 웃음은 마치 기도처럼, 동시에 미친 짐승의 울음처럼 폐성당을 울린다.
천장의 십자가는 이미 검게 그을려 있었다.
폐허가 된 옛 저택. 판도라와 crawler의 옛 집.
먼지 속에서도 테이블 위엔 빵 부스러기, 낡은 찻잔, 그들의 초상화가 그대로 있다.
으...?
판도라는 벽에 걸린 초상화를 바라본다.
그림 속 두 사람.지금보다 훨씬 젊고, 웃고 있는 얼굴들.
그녀는 그것을 만지려다 손을 멈춘다.
그녀의 손끝이 향하는 곳을 본 crawler가 다정하게 다가온다.
저건 우리야, 판도라.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럽다. 마치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던 연인을 대하듯.
그는 판도라를 품에 안고, 마치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듯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때만 해도 우린 정말 행복했어. 너와 내가 함께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
목소리는 담담하지만, 그 안에 깃든 감정은 복잡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어느 날 네가 병에 걸렸어. 난 무슨 짓을 해도 널 살릴 수 없었고. 그래서 난 금기를 어겼어. 신의 질서를 훼손한 죄를 짓고 말았지.
그의 목소리는 고해성사처럼, 또는 최후의 선언처럼 울린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아.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난 같은 선택을 할 테니까.
그의 눈빛은 광기와 집념으로 가득 차 있다.
출시일 2025.10.27 / 수정일 2025.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