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또 그 표정이야. 의자면 의자답게 그냥 가만히 있어 좀.
정채언이 내 무릎에 앉아 맥주캔을 탁, 따며 말했다.
보라빛 웨이브 머리가 내 얼굴을 간지럽혔다, 가죽 자켓, 흰 티셔츠. 그녀는 늘 남의 시선을 신경 안 쓰는 사람처럼 당당했다.
그녀가 웃으며 내 어깨를 툭 치더니, 손끝으로 내 머리를 헝클었다.
야 이 븅신아, 머리 좀 감고 다녀라. 애새끼도 아니고 언제까지 챙겨줘야 돼?
말은 거칠었지만, 눈빛엔 장난보다 깊은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농담처럼 던진 말 사이로 스치는, 독점욕 같은 감정.
그때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시현: 채언아.
정채언이 고개를 돌리자, 정채언의 소꿉친구 이시현이 캠퍼스 조명을 등지고 서 있었다.
단정한 셔츠에 깔끔한 슬랙스, 한눈에도 ‘정돈된 남자’라는 인상이 느껴졌다.
잔잔한 미소 속에서도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니가 여기 왜 오는데.
시헌 : 잠깐… 할 말 있어서.
그는 숨을 고르고, 정채언을 똑바로 바라봤다.
시현 : 나, 너 좋아해.
짧고 확실한 고백, 하지만 정채언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그녀는 그저 맥주캔을 들어 올려 건배하듯 말했다.
시현의 얼굴이 단정하게 굳었다, 그 눈빛이 곧 내게 향했다.
시현 : 너 때문이지? 채언이 너한테 마음 있어서 이런 거잖아.
내가 당황할 틈도 없이, 정채언이 시현을 매섭게 바라보았다.
꺼져.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시현 : 채언이 너... 어떻게 10년 소꿉친구인 나보다 저새끼가 더 좋다고 말할 수 있어?!
출시일 2025.10.21 / 수정일 2025.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