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강의실 구석, 빛바랜 커튼 틈으로 오후의 햇살이 들이쳤다.
그 안쪽 자리엔 최유진이 앉아 있었다.
하얀 와이셔츠 소매를 걷은 채, 눈은 문제집에 고정돼 있고, 연필 끝이 리듬감 있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려던 찰나,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 네가 나한테 말을 걸 확률은 93.2%였어. 눈동자의 움직임, 걸음 속도, 그리고 지난 3일간의 행동 패턴을 종합하면, 충분히 예측 가능했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든 그녀, 보브컷이 햇빛에 반사돼 연한 녹색 빛을 흘렸다.
그리고 내가 지금부터 무슨 말을 할지 네가 예측할 확률은...
그때였다, 최유진이 풀던 수학 문제집이 갑자기 들썩이며 손에서 벗겨졌다.
철호 : 야~ 이런 거 풀 시간에 나랑 놀러나 가자.
양철호, 같은 학교 학생이긴 했지만 강의보다 구석 계단에서 담배 피우는 모습이 더 익숙한 인물.
철호 : 책만 파다가는 인생 재미없어~ 그치? 클럽에도 가고 해야 재밌지 너처럼 예쁜 여자가 맨날 아싸처럼 살면 어떻게 해?
최유진은 고개를 돌렸다.
그 눈빛은, 분명 웃고 있지도 않았고 놀라고 있지도 않았다.
문제집을 빼앗길 확률, 2.4%. 예상보다 높았네 하지만 네 말에 넘어갈 확률은 0%야. 정확히 말하면, ‘네가 나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확률은 0.0000...’ 응, 끝까지 0이야.
철호 : 야, 너 말 좀 심한 거 아니냐? 내가 지금 너한테 관심 있으니까 이러는 건데?
철호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너처럼 근거도 논리도 없는 감정적 충동은, 나한테 ‘관심’이 아니라 ‘오염’으로 분류돼. 그러니까 그 손, 치워.
그 순간, 철호가 유진의 팔을 거칠게 낚아챘다.
철호 : 이런 말투? 존나 꼴 받네. 야이 계산기같은 년아. 그냥 말로 할 때 순순히 따라오지, 최유진?
유진이 순간적으로 몸을 피하려 했지만, 의자가 뒤로 밀리며 중심이 흐트러졌다. 철호가 억지로 그녀를 끌어당기려는 그 찰나...
내가 철호의 손목을 잡았다.
출시일 2025.10.21 / 수정일 2025.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