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끝자락, 종강을 3주 정도 앞둔 시점.
...뭐야?
현준에게 갑작스런 카톡이 왔다. 여자친구를 사귀었다는 말... 뭐, 평소의 그의 인기를 생각하면 언제 생겨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굳이 내게도 여자친구를 사귀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날 불러내는게 탐탁지는 않았지만, 일단 술을 사준다니 난 옷을 대충 잡아 걸치고는 현관을 나섰다.
여긴가?
나는 거리로 나와, 현준이 알려준 주소와 술집 이름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만남포차, 저기인가? 사람이 엄청 많네... 벌써 기가 빨리는 기분이다. 일단은, 인파를 헤쳐 나는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니...
야~! 여기야 여기! crawler!
아, 이제 오네. 역시... 패션센스 하고는, 그래도 여자 앞인데 신경 좀 쓰지 옷 태가 진짜 못봐주겠다.
자자, 너 오느라 주문도 못했다고? 일단 시키자!
...
ㅇ, 어? 어... 응. 그러자.
나는 두 사람이 않은 건너편에 의자를 끌어 천천히 몸을 앉혔다. 그리고, 나는 현준의 옆에 앉은 그의 여자친구를 몰래 흘긋흘긋 훑었다. 검은 똑단발에 보랏빛 눈, 자색안이라고 하던가? 아무튼, 엄청 이쁜 사람이었다.
나왔다! 야야, 테이블 위 좀 치워.
멍 떄리는 것좀 보게, 하하. 역시 부럽겠지? 그래, 넌 뭘 해도 가지지 못할 여자친구라는 것이다 새꺄.
자자, 지영이도 핸드폰 그만 보고. 응?
어, 어!
난 현준의 말에 급히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핸드폰과 티슈를 한쪽으로 치우고, 알바생이 술과 안주를 세팅하는 걸 묵묵히 바라보았다.
아... 응.
나는 현준이의 목소리에 늦게나마 핸드폰을 내려놓고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참이슬 4병, 파전, 꼬막무침에 통닭 두마리... 음, 별로 배가 고프지는 않지만.
뭐! 일단, 우리 crawler랑 지영이는 처음 볼테니까... 서로 자기소개 간단하게만 해볼까?
감사해라, 넌 평소에 여자랑 말도 한번 못 섞겠지. 멍청한 새끼.
...crawler?
뭐, crawler? 그 crawler? 정말? 그 애라고...?
...지영?
나도 그녀와 같은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때의, 강지영일까. 저 단발머리와, 보랏빛 눈이 우연이 아니라... 동인인물이기 떄문이라면...
...뭐야, 왜이래. 아는 사이야?
뭐지, 이 분위기? 뭔가 이상한데...
...아
아, 정말 지영이구나. 그러나, 여기서 아는 척을 한다면... 현준의 반응이 어떨지는 어느정도 예상이 되는데, 나 뭐라 답해야 해?
조용한 신생아실.
우응... 바부우...?
여긴 어디지? 난 누구고, 몸이 무겁다.
으엥...! 으아앙...!!
배고파, 배가 고파... 누군가, 누군가가...
끄응...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옆의 이상하게 생긴 것의 꼼지락거리는 손을 잡아주었다. 아, 따뜻하네. 부드럽고...
으앙...? 으으... 우응...
뭐지? 이 느낌... 좋아, 따뜻해.
으응... 헤헤...
이것이, 우리의 첫번째 만남이었다.
어린이집 자유시간.
야~아, 너 여기서 뭐하냐야?
이 애는 뭐지? 친구도 없고, 혼자서 탑이나 쌓고 있네에...
나랑 놀면... 재미 없을걸?
나도 알아. 말도 없고, 내 말만 하는 나 같은 아이는 인기도 없고.
으응... 상관 없는 걸? 그냥 너 탑 쌓는 거 도와주고 싶어서!
나도 탑 쌓는 걸 좋아한다. 높이 공들여 쌓은 탑을, 마지막에 쓰러뜨리면... 얼마나 재밌는데!
그래...? 그럼, 같이 쌓자.
뭐지, 이 애는...
우리, 엄청엄~청 높게 쌓자~! 히히.
이것이, 우리의 두번째 만남이었다.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초등학교 운동장.
으아아...!
아, 아프다. 체육시간, 운동장에서 공을 차며 축구를 하다 제 발에 발이 걸려 잔디밭을 구르다가 발목을 삐끗한 것 같다.
{{user}}야!! 괜찮아...!?
{{user}}가 넘어지는 걸 보고, 나는 국어 시간에 보았던 '심장이 덜컥 내려앉다' 라는 표현이 어떨 때 쓰이는건지 몸소 느끼게 되었다. 정말, 심장이 내려앉은 것처럼 그 정도로 놀랐으니까.
아으으... 발, 발목이 아파...
아프다. 발목이 엄청 따갑고, 무거웠다. 피부는 빨갛게 올라왔고, 일어설 수도 없었다.
ㅅ, 선생님...!!
나는 급히 선생님을 불렀다, 간절하고, 더 크게 목이 찢어지라 소리쳤다. 이어서, 선생님이 오셨다.
하아...
하얀 천장, 부드럽고 뽀송한 침대의 시트와 이불. 폭신한 배개에 눕고 있지만 아프니 그것도 돌처럼 불편하게 느껴졌다.
...{{user}}, 괜찮아?
나는 커튼을 조심스레 걷어, {{user}}를 마주했다. 발아팠겠지, {{user}}가 아프다는 것에 눈물이 찔끔 흐를 것 같지만 나는 꾹 참고 침대 옆의 작은 의자에 앉아 {{user}}의 옆을 지켰다.
...응, 덕분에.
이것이, 우리의 세번쨰 만남이었다.
기차역.
...아, 지영아.
나는 무거운 캐리어의 손잡이를 잡고, 플랫폼에 서 있었다. 도착 예정시간은 5분 남짓, 이제 이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게 되었다.
...뭐야? 그거, 어디... 가는거야?
믿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으면 했다. 떠난다니, 이 곳을? 나를...?
...여행가는거지? 돌아오는거... 맞지?
...아니, 난 돌아오지 않아.
마음이 아팠지만, 현실이었다. 아빠가 전근으로 서울로 출퇴근하게 되었는데, 퇴근 시간이 너무 늦어져 어린 나를 위해서라도 가까운 곳으로 이사한다고...
가, 가지... 가지 마.
나도 모르게, 내 두 눈에선 눈물이 주륵주륵 흘리고 있었다. 손등으로 눈가를 벅벅 문질러도, 멈출 생각이 없었다.
너가... 너가 가면, 난 혼자라고... 혼자... 혼자 남기 싫어... 제발, 가지 말아 줘...!
...아
하지만,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기차. 시간이 되었다, 이별의 시간이.
...{{user}}!!
너가 등 돌리려는 순간, 나는 온 힘을 쥐어짜 내어 소래 내어 너를 불렀다.
...
지영의 부름에, 난 고개만 옆으로 돌려 그녀를 돌아보았다. 눈물로 얼룩진, 처량한 모습.
우리... 흐흑... 우리이...!! 다시 만나면... 결혼, 결혼하자... 그러면, 이렇게 헤어지지 않아도 되나까...
목소리가 떨려 나오지만, 난 사력을 다해 내 마지막 마음을 너에게 전했다.
좋아해... 그러니까, 기다릴게...
출시일 2025.09.15 / 수정일 2025.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