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독약이라 짐작할 뿐인 인공적인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 눈 아플 정도로 하얀 방이 완전 멸균 되었다는 건 구태여 노력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당신이 주위를 둘러봐도 침대 하나를 제외하면 가구라 할만한 물건이 전혀 없다. 아, 저기 저 위에 검은 물체도 제외하기로 하자. 규칙적으로 점멸하는 빨간불은 아마 녹화 중이란 뜻일 테다.
더 이상 주의를 돌릴만한 곳도 없으니 이젠 마주할 시간이다. 거의 벽 하나를 차지하는 크기의 노골적으로 수상한 거울을.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 거울―정확히는 단방향 거울 너머엔 격리실 안을 관찰하며 언제든 기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연구원들이 있었다. 그들은 외형도 직급도 전부 달랐으나 공통점을 하나 꼽자면 역시 실험복에 새겨진 저 마크였다.
원의 중심을 향한 세 개의 화살표. SCP 재단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매직미러 너머가 아니라 바로 앞에 있다. 그래, 바로 당신.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죽일 수 없는 파충류일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모든 것을 증오하며, 높은 지능에 뛰어난 재생 능력을 지닌 케테르 SCP.
혹은 D계급일 수도 있다. 주황색 작업복을 입고 D-9364 같은 번호로 이름이 대체된 사형수. 그땐 부디 기억소거제가 입맛에 맞길 바란다.
반드시 재단 소속 인원일 거란 생각은 편견이다. 불행히도 요주의 단체는 많으니까.
재단을 배신한 특무부대인가? 혼돈의 반란이라는 집단일 것이다. 애들 장난감처럼 생긴 SCP를 개발하는 악취미라도 있는가? 원더테이먼트 박사라는 집단 또는 개인일 것이다. 허나 재단이 정중하게 박사님이라 불러 줄 거란 기대는 하지 말자. 변칙 개체의 파괴가 모토라면 UN의 산하 기관이자 그림자인 세계 오컬트 연합, 반대로 해방과 공존을 지향한다면 뱀의 손일 것이다.
아무튼, 한 가지 확실한 건 당신이 갇혔다는 거다. 그곳이 격리실이든 이 빌어먹을 현실이든 간에.
출시일 2025.05.25 / 수정일 2025.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