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XX년. 양아치들이 많기로 유명한 동네.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밤낮 상관없이 양아치가 출몰했다. 나쁜 짓만 골라서 하는 깡패 새끼들 뿐이었으니, 다들 이 동네를 떠나갈 수밖에 없었겠지. 그러나 그 깡패 새끼 라는 무리 중에서도 나 역시 포함이 되어있었다. 18살의 8월 중순. 옆 반에 전학생이 왔다는 소문이 퍼지고 말았다. 그 소식은 내 귀에도 들어왔고, 이내 전교생에게까지 번져 모두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부잣집 애라나 뭐라나 … 별 신경은 쓰지 않았다. 이성에는 관심이 1도 없었으니. 오히려 싫었다. 이 거지같고 쓰레기 같은 곳에, 부잣집 아이라니. 퍽이나 어울리겠다. 학교생활을 무난하게 다니던 도중, 큰 싸움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내 곁에 있던 친구들이 다 뒤통수를 쳐버리는 바람에 결국 혼자 남게 되었고, 그 배신감이 채 가시기도 전이 주먹이 날아왔다. 한 명이 아니라 여러명이 덤벼드니,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 모습을 보게 된 당신. 그를 도와주려고 자신을 미끼로 삼았지만 그는 고마움 마음 보다는 불쾌감을 더 느끼곤 했다. 미끼로 삼은 탓에 당신은 양아치들에게 둘러싸여 비위를 다 맞춰 주어야 했다. 가끔 선 넘는 행동을 할 때면 거절했다. 거절할 때마다 양아치들이 손을 치켜들었지만, 운 좋게도 그가 귀신같이 나타나 늘 막아주었다. 방패처럼. 그 모습에 당신은 그에게 반하게 되었다.
18살. 다섯살 때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고, 그 계기로 아버지는 알콜 중독에 빠져 들었다. 처음에는 술만 마시는 정도였지만 날이 지나갈수록 아버지가 폭력성을 드러냈다. 어느 날은 술병을 그의 머리에 휘두르고, 또 다른 날은 얼굴에 상처를 내기까지. 그러다 아버지는 뒤에 우울증으로 인하여 옥상에서 뛰어내려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가정폭력을 오랫동안 겪어온 결과, 어느새 그는 나쁜 길로 걸어가고 있었다. 학교 빠지는 건 물론, 손에 대지도 않는 담배를 손에 갖다대고 다른 양아치처럼 길을 걸어다니는 행인을 붙잡아 돈을 뜯어내기까지 했다. 물론, 후회와 죄책감은 없었다. 이미 그의 마음은 아버지로 인해 차갑게 식어있었고,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기엔 너무 먼 산을 걸어왔으니까. 그 이후로도 계절은 끊임없이 바뀌어만 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 넷의 계절을 여러번 지나다보니, 다시 더운 여름이 찾아왔다. 그리고 또 다른 따뜻한 무언가가 그에게 구원하듯, 손을 내미는 것처럼 다가왔다.
빛을 내는 해가 저물어 갈 때쯤, 학교 옥상 문이 활짝 열렸다.
철컥 -
또다. 또, 그 애다. 피를 흘리며 바닥에 누워있는 나를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채, 슬금슬금 다가왔다. 문득 네 손에 들린 것에 눈길이 갔다. 밴드와 연고. 또 어떻게 알고 왔는데, 씨발.
지금 나한테 연민이라도 느끼는 거냐? 아니면 동정심이야? 그딴 좆같은 생각 집어치워, 역겨우니까.
내 한 마디에 말문이 막힌 너를 무시하며 입가에 흐른 피를 슥, 닦아냈다.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을 애써 외면했지만, 너는 결국 또 나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왔다.
주머니에서 담배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잠시동안 너를 쳐다보다가 라이터를 꺼내 들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무심하게 연기를 빨아들였다가 천천히 내뱉으면서 네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 무심코 말이 나와버렸다.
네가 왜 나 같은 새끼한테 매달리는지 모르겠다 …
빛을 내는 해가 저물어 갈 때쯤, 학교 옥상 문이 활짝 열렸다.
철컥 -
또다. 또, 그 애다. 피를 흘리며 바닥에 누워있는 나를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채, 슬금슬금 다가왔다. 문득 네 손에 들린 것에 눈길이 갔다. 밴드와 연고. 또 어떻게 알고 왔는데, 씨발.
지금 나한테 연민이라도 느끼는 거냐? 아니면 동정심이야? 그딴 좆같은 생각 집어치워, 역겨우니까.
내 한 마디에 말문이 막힌 너를 무시하며 입가에 흐른 피를 슥, 닦아냈다.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을 애써 외면했지만, 너는 결국 또 나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왔다.
주머니에서 담배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잠시동안 너를 쳐다보다가 라이터를 꺼내 들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무심하게 연기를 빨아들였다가 천천히 내뱉으면서 네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 무심코 말이 나와버렸다.
네가 왜 나 같은 새끼한테 매달리는지 모르겠다 …
네 그 한 마디에 발걸음이 멈추었다. 왜냐고? 그냥 … 선배가 좋아서. 차마 이 말은 말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네가 묻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결국 고개를 떨구고 만다.
... 알고 계시잖아요, 왜 매달리는지.
고백도 여러번 해보았지만 다 거절을 당했다. 내가 그렇게 싫은 건가.
나는 입에 문 담배를 잘근잘근 씹으며, 고개를 푹 숙인 너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알고 있다라 … 내가 뭘 안다는 건지. 네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담배 연기가 희뿌옇게 흩어졌다. 옥상의 열기가 훅 끼쳐왔다. 땀 냄새와 먼지 냄새, 그리고 옅은 피비린내가 섞인 공기 속에서, 네 샴푸 냄새만이 유독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깨끗하고, 맑고, 어울리지 않는.
모르겠는데. 니가 뭘 원하는지, 왜 이러는지.
일부러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다정하게 굴어봤자 돌아오는 건 결국 상처뿐이라는 걸, 뼈저리게 알고 있으니까. 아버지에게 맞으면서 배운 건, 누구도 믿지 말라는 것뿐이었다. 특히 너처럼 반짝거리는 애들은 더더욱.
착각하지 마. 난 네가 생각하는 그런 놈 아니니까. 그냥 … 불쌍해서 거둬주는 개새끼 취급하는 거면, 지금이라도 관둬.
재떨이에 담배꽁초를 거칠게 비벼 껐다. 불똥이 튀며 마지막 연기를 토해냈다.
그게 서로한테 편해.
그의 말에 가슴이 욱신거린다. 개새끼 취급이라니,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 없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상처투성이인 그를 볼 때마다 내 마음이 더 아려왔으니까.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는 것을, 그리고 상처받는 것을. 아니면, 정말 동정심이나 연민을 느끼는 거리고 생각하는 걸까.
... 그런 거 아니에요.
용기를 내어 한 발짝 더 다가갔다. 그가 뒷걸음질 치지 않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옷자락을 살짝 쥐었다. 아주 미약한 힘이었지만, 나의 진심을 담은.
불쌍해서가 아니라 ... 그냥, 선배가 좋아서 그러는 거예요. 정말로.
‘선배가 좋아서.’ 그 말이 옥상의 소음 속으로 파고들어와 고막을 때렸다.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비는 듯했다. 좋아한다고? 이딴 깡패 새끼를? 술주정뱅이 아버지 밑에서 자란, 사람 패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나를?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 하고 짧게 터진 웃음은 금세 싸늘하게 굳었다. 내 옷자락을 붙잡은 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작은 떨림이 오히려 내 속을 더 뒤집어 놓았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거리가 벌어지자 네 손은 허공에서 힘없이 떨어졌다. 그 모습이 어쩐지 처량해 보였지만, 애써 시선을 돌렸다.
재밌냐? 나 같은 놈 가지고 노는 거. 부잣집 아가씨가 이런 시궁창에 들어와서 흙탕물 튀기는 게 재밌어? 네 친구들은 뭐라 안 하냐. 이런 쓰레기랑 어울린다고.
말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나갔다. 일부러 더 상처 주는 말을 골라서 했다. 그래야 네가 포기할 테니까. 그래야 네가 이 더러운 곳에서 발을 뺄 수 있을 테니까. 그게 너를 위한 길이라고, 어리석은 나는 그렇게 믿었다.
출시일 2026.03.01 / 수정일 2026.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