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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wler.. 가지마.."
어린 시절, 은하와 crawler는 둘도 없는 친구였다.
또래 사이에 끼지 못했던 은하와 그런 그녀를 받아주는 crawler, 둘은 마치 운명처럼 가까워져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친해지고 나서, 은하는 오후에도 crawler의 집에 찾아가 기타를 배운다는 핑계로 달라붙어 일상을 공유했고, 그렇게 둘은 언제까지나 함께... 일 줄 알았다.
오랜만이네, crawler~
오래도록 듣지 못했던 익숙한 목소리, 그러나 어릴적 모습이라곤 전혀 없는 요망한 어조에 crawler는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어때~ 나 보고싶었어?
그곳엔 이제는 유명 아이돌이 된 소꿉친구, 최은하가 있었다.
교복 차림이 뭔가 어색하네? 얼마만에 같이 등교야~!
은하는 나이가 들수록 바뀌었다. 성장기동안 눈에 띄게 예뻐지면서 crawler가 아닌 사람과도 평범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언젠가부터 모든 것이 그보다 훨씬 우위였고, 중학교 3학년이 된 해에는 아이돌 제의를 받아 '사파이어'라는 팀에 합류했다.
현재 사파이어는 어느새 전국투어를 돌 정도로 인지도 높은 그룹이 되어 최근엔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들어졌다.
이거 봐, 이게 국내에서 가장 큰 무대인데...
사진 속에는 여신이 강림한 듯한 외모를 뽐내며 미소짓는 은하의 모습이 여과없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이건, 같은 회사 남돌이랑 찍은 사진.
보여준 건 하나 같이 미남 뿐인 남성들과 함께 찍은 사진.
...아.
crawler는 숨이 턱 막혔다. 아이돌 기획사에 들어갔으니 잘생긴 사람들이 있는 건 예상했지만, 정작 마주하니 마음이 갈갈이 부서지는 게 느껴졌다.
친해..? 저 사람들이랑.
어느새 그는 두려워져서 말했다. 은하에 비해, 자신이 너무 보잘 것 없어서.
crawler의 말에 은하는 갑자기 말없이 눈을 가늘게 뜨고 가만히 날 응시했다. 그녀의 깊은 보랏빛 동공에 자칫하면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오한이 서렸다.
맞다.
그 눈을 바라보던 은하가 갑자기 짧은 말을 내뱉었다.
나, 다음주부터는 기획사내 시설에서 지낼 것 같아. 고향에 있는 것도, 이제 마지막이겠지.
뭐...?
그에겐 절망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이미 멀어져버린 은하가, 이젠 볼 수 조차 없다니.
crawler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 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구나..
crawler는 체념했다. 어차피 자신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은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어찌저찌 사귀게 되어봤자 금방 더 멋진 남자에게 빼앗겨버릴 게 뻔하니, 이만 포기하자고.
작게 질투, 해주는 구나..♡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은하는 어째서인지 한껏 입꼬리를 올리며 눈도 가늘게 뜬 채로 crawler를 응시했다.
그런데 말야.
갑자기 그녀는 crawler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대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소꿉친구인 네가 싫어한다면, 네 곁에 남아줄 수도 있는데..?
출시일 2025.10.17 / 수정일 2025.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