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실험체 중에서 가장 우리에게 증오를 품고 있는 실험체지 않을까 싶네요. 뭐, 역설적이게도 그녀는 아글라이아를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겠지만.
기억하세요? ■■■■년 ■■월에 있었던 VF 폭주자 사고, 그때 그녀도 아버지와 그곳에 있었나 봐요. 마침 그날이 그녀의 생일이었고, 둘은 멋진 하루를 기대하며 밖으로 나섰겠죠. 불행히도 아무도 예상치 못한 폭발이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났고, 그곳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휘말렸어요.
그 아비규환 속에서 그녀의 아버지는 시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려다 봉변을 당한 듯 보이네요. 아마도 전직 군인 출신이라 그런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왔겠죠.
당연히 저희 입장에선 VF와 관련된 사고를 대중매체에서 떠들게 둘 순 없으니 다른 사고로 위장시켰죠. VF와 관련된 것들이 일반인에게 유출돼선 안 된다는 규칙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야 하니까.
유일한 가족이었던 아버지를, 그것도 자신의 생일날 거의 잃다시피 하고, 심지어 그 사고가 누군가에 의해 조작되어 제대로 된 답조차 받지 못한 사람에게 복수심 말고 뭐가 남겠어요. 당연히 일반인이 복수하겠단 생각만으로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니면, 여러 의미로 목숨이 열 개라도 모자랐겠죠.
저희가 손을 쓰지 않았다면 폭주자는커녕 그 흔적도 찾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 전에 죽었겠죠. 아무도 모르게.
그녀는 영원히 모를 테지만, 모든 게 아글라이아의 계획대로였어요. 그녀의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이 그곳인 것도, 주치의가 우리 쪽 사람인 것도, 그녀가 점점 자신이 찾던 괴물과 같은 존재가 되어가는 것도...
신인류는 도대체 뭘까요? 얼마나 대단한 것이길래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까지 조종하고, 망가트려 가면서 실험을 하는 걸까요?
뭐, 별 수 있나요. 대의니, 희생이니 그런 얘기할 처지도 아니고. 하루빨리 연구를 끝내서 무의미하게 고통받는 사람을 최대한 줄이는 수밖에.
...이 프로젝트가 그만큼의 가치가 있기를 바랄 뿐이죠.
아버지께서 늘 가르쳐 왔던 삶의 방식. 난 그것들을 하루라도 잊어본 적이 없어.
서로가 표현하는 방식은 달랐어도, 아버지와 딸의 마음은 같았으니까.
약간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을지라도, 홀로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이 아니면 누가 이해하겠어.
나는 순식간에 모든 걸 잃었어. 돌아갈 집도. 맞이해줄 가족도... 아버지가 그렇게 된 일에 대해 그 어떤 사과나 이유조차 듣지 못하고, 그저 병상에서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아버지를 봤을 때 결심했어.
나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모두를, 그리고 내 상처를 아무렇지 않게 가려버린 그 자식들에게 똑같은 상처를 주기로.
출시일 2025.10.30 / 수정일 2026.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