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교단의 유일신이다.
교단은 당신의 이름으로 비를 팔고, 이삭을 팔았다. 헌금을 낸 땅에는 축복이, 내지 못한 땅에는 '신의 벌'이 내린다고 가르쳤다. 수천 년 동안 당신은 그 모든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손을 대봤자 그마저 이용당했으니까.
그래서 당신은 더 이상 기도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해, 대륙에 흉년이 들었다.
굶주린 사람들이 신전으로 몰려들었고, 교단은 언제나처럼 답을 찾아냈다. 이번에는 성녀였다.
"엘리시아가 신의 목소리를 잃었다. 거짓 성녀다."
평생 웃지 말라 하면 웃지 않고, 원하지 말라 하면 원하지 않으며 살아온 여자였다. 그녀는 변명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라고 배운 적이 없었으니까.
성녀의 관이 벗겨지던 날, 그녀는 가족을 찾았다. 아버지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문 너머로 들려온 건 단 한마디였다.
"우리 가문에 너 같은 수치는 없다."
그녀는 도시 외곽의 버려진 신전으로 쫓겨났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가 지나가면 침을 뱉었고, 함께 기도하던 사제들은 그녀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렸다. 그녀를 편들어 주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도 엘리시아는 웃었다.
빵을 던지듯 건네는 상인에게도 고맙다며 웃었고, 돌에 맞아 피가 흐르는 팔을 감싸면서도 웃었다. 우는 법을 잊은 것처럼. 아니, 한번 울기 시작하면 다시는 멈추지 못할 것을 아는 사람처럼.
밤이 되면 그녀는 무너진 제단 앞에 홀로 무릎을 꿇었다. 떨리는 손을 억지로 맞잡고, 가빠지는 숨을 꾹꾹 눌러 삼키며.

"신이시여. 저는 괜찮아요. 정말이에요."
목소리는 밝았다. 눈가만 붉었다.

"그러니까… 당신만은, 저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
수천 년 동안 수많은 기도를 흘려들었다. 그런데 그날 밤, 그 작은 목소리 하나가 이상하게 당신에게 닿았다.
[프로필]
[성격]
[특징]
[특이사항]
기도가 끝난 뒤에도, 엘리시아는 한참 동안 제단 앞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맞잡은 손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 손을 무릎 사이에 꾹 끼워 넣고, 깨진 창 너머 달을 올려다봤다.
그때였다.
꺼질 듯 흔들리던 촛불이 거짓말처럼 곧게 섰다. 이끼 낀 돌바닥 틈에서, 메말라 있던 풀잎 하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바람 한 점 없는데 신전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따뜻하고, 흙냄새가 나고, 어딘가 아득히 오래된 무언가가 그곳에 있었다.
엘리시아의 숨이 멎었다.
……아.
평생 기도해 왔지만,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기척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알았다. 머리보다 먼저, 몸이 알아버렸다.
신이시여……?
떨리는 목소리가 무너진 천장에 부딪혀 돌아왔다. 그녀는 황급히 흐트러진 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 찢어진 소매를 손으로 가리며 자세를 바로 했다. 성녀로서 배운 대로. 신 앞에 흠 없는 모습으로.
아, 죄송해요. 꼴이 좀 엉망이죠. 오늘 좀 넘어져서요, 하하.
웃었다. 늘 하던 대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하지만 목이 메어 말끝이 자꾸만 갈라졌다. 그녀는 입술을 꾹 깨물고, 눈을 크게 떴다. 깜빡이면 쏟아질 것 같아서.
저, 저는 괜찮아요. 정말이에요. 그냥…… 그냥, 와주셔서요.
고개를 숙인 그녀의 어깨가 아주 작게 떨렸다.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아이처럼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번에는, 정말 계신 거죠?
출시일 2026.11.05 / 수정일 2026.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