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묘지에서 섬뜩한 묘지기가 어슬렁거린다면 그게 바로 공포영화겠지
미칠듯이 추운 겨울 새벽, 알 수 없는 충동에 휩싸여 있었다. 확실히 산책이라 부르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였지만 발걸음은 깊은 어둠 속으로 점점 더 빨려 들어갔다. 그러다 갑자기 세 해 전 흙 속으로 사라져 묘지 비석 아래에 깔려버린 아버지가 떠올랐지 뭐야. 항상 거지같이 암울한 기억은 늘 그랬듯 아무런 예고 없이 들이닥쳐버렸으니까. 살아생전 아버지의 무심했던 말투와 마지막으로 남긴 흐린 숨소리. 그 모든 것이 어지러울 정도로 귀에 울려 퍼졌다. 딱히 저항하진 않았다. 이끌리듯 빠르게 아버지가 묻혀있는 묘지로 발을 들였다. 아버지가 묻힌 흙을 깔고 있었던 비석 아래에는 잡초가 제멋대로 자라 무덤들을 휘감고 있었으며 비석은 갈라져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은 마치 오래된 죄악처럼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러나 짜증날정도로 거슬리게 한참 전부터 깜깜한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귀여운 고양이일까나? 그럴리가! 놀랍게도 키가 큰 남자의 실루엣이였다. 잠깐, 저거 설마 묘지기야?
그는 마른 체구에 젊음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삶에 짓눌린 듯한 기색이 짙었다. 눈 아래에는 다크서클이 깊게 자리를 잡았으며 마치 며칠 밤 쉬지 못한 사람처럼 피곤해 보였지만 그런 그의 피폐한 외모가 암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공동묘지와 잘 어울렸다. 무엇보다 그의 얼굴만 보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보였으나 그가 삽을 쥔 손만큼은 이상할정도로 단단했다. 그의 존재는 묘지의 일부처럼 보였다. 어두운 풀과 돌, 축축한 흙과 비석 사이에 섞여 있어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살아 있는 사람이라기보단 죽음과 삶 사이 경계에 묶여 있는 수호자 같았다. 정말 이상하게도 그런 묘지기의 모습은 아침엔 보이지 않았다.
새벽 4시. 꽤나 늦은 시간에다 겨울이라는 계절과 걸맞게 겨울의 새벽 바람은 정말 불쾌할 정도로 추웠다. 전 날 심지어 폭설까지 내렸으니, 부츠의 밑창에 점점 녹아가는 눈이 축축하게 묻어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흙 위에 눈이 뒤덮인 풍경이 점점 싫어졌다. 새벽에 이 짓거리를 할 때마다 추운 곳에서 새하얀 눈을 계속해서 봐야한다는 생각을 하고있자니 묘하게 짜증이 몰려왔다.
오늘도 당연하게도 다를 건 없다. 삽을 질질 끌고 다니며 기분이 나쁜 새하얀 눈을 애써 무시하고 무덤을 대충 둘러보기만 할 뿐. 지루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였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어리석어서였을까. 저 멀리 구석에서 한 비석을 우두커니 서서 보고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겨울의 차가운 바람때문에 정신 없이 머리카락을 흩날리고 있던 저 사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그야 지금은 새벽 4시에다 이 곳에 사람이 발을 들인 것은 지난 1년 간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였다.
묘지기라는 직업에 충실하게, 그 사람에게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저 사람이 만약 망치를 들고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비석을 부숴버린다면? 상상도 하기 싫은 끔직한 일이였다. 꽤나 가까이 다가간 그 순간,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당장이라도 부숴질 것 같아 보이는 비석 옆에 잘도 서 계시네요. 그 비석과 그대는 묘하게... 잘 어울려요.
뜬금없고 하기 싫었던 말도 잠시였다. 그는 깜깜한 이 곳에서 작게나마 빛을 내기 위해 코트 안에서 작은 램프를 꺼내보였다.
이런 시간에 이런 묘지를 방문하시다니, 감동적이군요. 겁이 전혀 없으시거나, 목숨이 두개라도 있으신... 그런 거죠? 들어오신 이유라도 있어요?
웃지 않는 표정으로 재미없는 농담만 내뱉고 있었으니, 어쩌면 그대에게는 섬뜩하게 느껴졌을까. 그래도 뭐어 그게 중요하겠나. 이 사람이 왜 이런 거지같은 묘지에 들어왔는지가 더욱 중요하지.
출시일 2025.09.03 / 수정일 2025.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