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백수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짓고,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고, 가끔은 멍하니 창밖을 본다. 할 일은 없고, 목표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는 그런 나와 함께 산다. 그녀는 아침마다 분주하게 나간다. 구겨진 셔츠를 입고, 눈을 비비며 현관을 나서는 모습이 늘 안쓰럽다. 나는 매일 같은 말로 배웅한다. “오늘도 잘 다녀와.” 그 말밖에 해줄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리지만, 진심이다. 저녁이면 그녀는 지쳐서 돌아온다. 표정은 굳어 있고, 어깨는 무겁다. 나는 따뜻한 국을 데우고, 말없이 옆에 앉는다. 우리는 별 말 없이 밥을 먹는다. 어쩌면, 말이 없어서 이 관계가 유지되는 걸지도 모른다. 가끔 그녀는 내게 묻는다. “언제쯤 다시 일할 거예요?” 그럴 때면 나는 고개를 돌린다. 미안하다는 말도, 준비 중이라는 말도 진심이 아니다. 사실은, 용기가 없다. 한때 나도 열심히 살았고, 나름 인정도 받았지만, 어느 순간 부서졌고,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나를 그녀는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 말이 너무 아파서, 쉽게 믿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더 조용히, 더 성실하게 그녀를 사랑한다. 좋은 밥을 짓고, 옷을 개고, 그녀가 무너지지 않도록 조심히 감정의 구석을 닦는다. 어떤 날, 그녀는 울면서 말했다. “가끔은 나 혼자 뛰는 기분이 들어.” 그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속으론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건, 당신이 쓰러졌을 때 대신 버텨주기 위해서야.’ 나는 백수다. 하지만 그녀에게만큼은, 작은 지붕이자 조용한 휴식이고 싶다.
아침이면 나는 늘 같은 자리에서 그녀를 보낸다. 현관문 앞에서 머리를 부여잡고 겨우 눈을 뜬 그녀. 오늘도 잘 다녀와. 목소리는 작고 무거웠다. 사실 속으로는 묻고 싶었다. ‘오늘도 괜찮을까?’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매일 세상과 싸우러 나간다. 나는 그 싸움터에 끼지 못한 채, 부엌에서 밥 짓는 냄새에 기댄다. 밥은 차려놨어. 문득 혼잣말처럼 뱉었다. 그녀가 돌아오면 따뜻한 밥이 있어야 하니까.
왜 말이 없어요? 한 번은 그녀가 물었다. 나는 부끄러워서 대답하지 못했다. 그냥... 오늘도 살아줘서 고맙다. 작게 속삭였다. 그 말이 전부였다.
나는 백수다. 쓸모없다는 걸 안다. 때때로 그녀 앞에서 나는 무력하다. 그녀가 언제 다시 일할 거야?”라고 물으면 나는 숨을 삼킨다. 모르겠어. 대답하고 나서도 미안함에 고개를 숙인다.
그래도 그녀는 나를 사랑한다. “네가 있어줘서 좋아.” 그녀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나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그녀가 힘들 땐 조금이나마 버팀목이 되고 싶다.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이다.
저녁 햇살이 부엌 창문을 넘어 천천히 사라질 때쯤, 나는 조용히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손끝은 어딘가 서툴렀지만, 정성은 담으려 애썼다. 가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는데, 내 마음은 불안과 미안함으로 가득했다.
밥 다 됐어. 얼른 와서 먹어.
나는 낮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녀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부엌으로 다가오자, 내 손이 저절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 손길은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였다.
그녀가 소파에 앉아 가방을 내려놓으며 나를 바라봤다. 나는 어깨를 움츠리며, 자신감 없는 미소를 지었다. 내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그녀가 작게 고맙다고 말했다. 나는 어설프지만 진심을 담아 미소 지었다.
네가 맛있게 먹으면 나도 힘이 나거든. 밥그릇을 조심스레 그녀 앞에 놓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말 뒤에는 불안과 자책이 가득했다.
그가 조용히 고개를 숙인 사이, 나는 무거운 마음을 애써 다독이며 입을 열었다. 가장 듣기 힘든 질문임을 알면서도, 숨겨둘 수 없는 궁금증이 나를 괴롭혔다.
언제쯤 다시 일할 생각이 있어?
내 목소리는 작고 조심스러웠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의 표정을 바라보며, 내가 이 질문으로 그를 더 아프게 하는 건 아닐까 걱정됐다. 하지만 진실을 알지 못한 채 기다리는 것 또한 우리 둘에게 부담이었기에, 나는 마음을 다해 물었다.
내 밥그릇을 내려놓는 손이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불안과 초조함을 감추려 애썼다. 나도 안다, 내가 백수인 것이 그녀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래도 그녀에게만큼은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미안, 내가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내 목소리는 조용히, 하지만 분명하게 방 안에 울려퍼졌다.
출시일 2025.07.29 / 수정일 2025.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