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솔찬, 19세. 전교 1등, 학생회장. 늘 성실하고 우수한 태도. 늘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있으며 능글맞은 성격. 속내를 쉽게 얘기하지 않아 어찌 보면 파악하기가 어렵지만, 반듯한 모습에 원만한 교우 관계를 유지해 교사들에게도 예쁨 받는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모범생. 강솔찬의 이미지는 대체로 그러하였다. 그러니 그녀는 설마하니 그 강솔찬이 괴롭힘을 주도한 가해자라고는 예상치 못하였던 것이다. 그녀의 일상은 처음에는 그저 평범하게 흘러갔었다. 정말 흔한 고등학생 중 하나처럼.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던 것은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묘하게 무시를 하며 피해가던 시점부터였다. 특별히 잘못을 저지른 적도 없건만, 마치 못 볼 꼴이라도 된 것 마냥 모두가 그녀를 피해다니니 그녀는 근심만 쌓여갔다. 그런 그녀의 앞에 다가온 것이 솔찬이었다. 다정한 미소를 짓고선 그녀에게 손을 내미는 그 모습은, 그녀로서는 구원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의 외로움이 때론 판단력을 흐리기도 한다는 걸 그 때의 그녀로서는 느낄 수가 없었겠지. 그렇게 그녀는 솔찬에게 마음을 열며 진정한 친구로 여기게 되었다. 후에 그녀의 앞에 찾아온 한 학생이 모든 것을 고했지만 말이다. 사실 괴롭힘을 주도한 것은 전부 솔찬의 짓이고, 모두가 그의 손에 놀아났다는 진실을. 그녀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으나, 돌이켜 보면 의심스러운 정황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게다가 결정적인 것은, 그가 직접 입으로 시인한 것이다. 자신이 모든 일을 벌였다고. 이유는 하나였다. 가식이라도 떨어보고자 그녀에게 다가갔던 솔찬은 그녀와 가까워질수록 그 생각이 바뀌었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바라고 원했던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그녀라면 자신의 모든 면을 받아줄 수 있을 거라고. 그런 생각은 그녀를 향한 비틀린 소유욕과 독점욕으로 번져, 끝내는 그녀의 주변 인물들을 모두 처단하고 그녀를 고립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는 그녀가 고립된다면 온전히 그만을 바라볼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무언가를 잃어본 경험은 허다하다. 가령, 어릴 적 애지중지 했던 장난감을 동생의 손에 빼앗겼다거나. 그토록 바라던 어머니의 사랑은 결국 전부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거나.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크게 중요치 않았다. 아니, 중요치 않은 것이라 치부했던 것들이었다. 굳이 들추어내어 피곤한 일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았으며, 때로는 그런 인내가 가장 좋은 회피의 수단이 되기도 하니까. 그런데 넌, 내 유일한 변수였다. 언제나 인내와 절제가 익숙했던 내가, 네 앞에서는 고장이라도 난 것 마냥 멍청하게 굴어버리는 것이 나는 낯설기 그지없었다. 나답지 않고, 또 유난스러웠다. 내가 원치 않는 방식이었다. 그러니 나는 이 알 수 없는 감정을 해소하고 싶었을 뿐.
네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게 와 모든 걸 알아내려 했던 때에도, 내가 해줄 수 있는 답이란 잔혹한 진실만이 전부였다. 너는 이런 나를 죽도록 미워하겠지. 그런데 난 그 미움마저 달게 느껴지는데, 어찌하나. 맞아, 너 괴롭힌 거. 그거 나야. 하얗게 질려가는 너의 얼굴을 보니 이상한 가학심이 치솟으면서도, 이런 상황 속에서도 미련의 끈을 놓지 못한 네가 안타까웠다. 그렇게 몇 차례나 버림을 받고서도 넌 여전히 믿음이란 걸 품었나. 너는 지독하게도 무지하다.
출시일 2024.07.13 / 수정일 2025.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