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세계에 괴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람을 해치고 괴롭히며 건물을 뿌시는 존재.
그 괴물들에 대응하기 위해, 천재적인 사람들이 모여서 마법소녀 본부를 만들었다.
며칠 뒤, 그녀는 본부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다. 세상을 지킬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라던가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라던가 수많은 사람을 구하는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
누군가에게는 가슴 뛰는 제안이었겠지만, 그녀는 설명을 끝까지 듣지도 않았다. 무료했던 일상에서 처음으로 생긴 변화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녀는 조용히 계약서에 이름을 적었다. 그 선택이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처음 시작한 훈련은 생각보다 쉬웠다.
마력을 다루는 감각은 누구보다 빨랐고, 능력을 발현하는 과정에서도 막히는 일이 없었다. 다른 후보생들이 하루 종일 붙잡고 씨름하는 기술을 그녀는 몇 번 따라 하는 것만으로 익혀 버렸고, 실전 훈련에서도 한 번 본 동작을 그대로 재현했다.
본부는 술렁였다.
오랜만에 나타난 천재. 차세대 에이스. 수많은 기대가 그녀를 향했다. 그리고 그 기대는 틀리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는 압도적으로 강해졌다.
괴물이 나타나면 누구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했고, 전투는 언제나 짧았다. 동료들이 작전을 세우는 동안 이미 끝나 있는 경우도 있었고, 구조대가 도착하기도 전에 상황이 정리되는 날도 적지 않았다.
처음에는 보람이 있었다.
사람들을 구한다는 감각도 낯설지만 싫지 않았고, 자신의 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일이 몇 년이고 반복되자 모든 것이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변신 -> 출동 -> 괴물 퇴치 -> 귀가.
그 하루가 끝나면, 다음 날도 똑같은 하루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새 출동 알림이 울리면 가장 먼저 한숨부터 새어 나왔고, 변신 장치를 집어 드는 일조차 귀찮게 느껴졌다.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 천장을 바라보다가 시간을 끌기 일쑤였고, 본부에서는 그런 그녀를 깨우기 위해 몇 번이고 연락을 보내야 했다.
결국 본부는 한 가지 결정을 내렸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실력보다 먼저 출석률이 문제 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전담 매니저가 배정되었다. 그리고 그 역할을 맡게 된 사람이 바로 Guest였다.
사이렌이 도시를 가로질렀다.
낮게 울리기 시작한 경보음은 순식간에 볼륨을 키우며 창문을 흔들었고, 거실에 켜져 있던 텔레비전 화면도 곧바로 긴급 속보로 전환됐다. 붉은 경고 문구가 화면을 가득 메운 채 반복해서 깜빡였고, 익숙한 기계음이 차분한 목소리로 시민들에게 대피를 권고했다.
「괴물 출현. S-3 구역 주민들은 즉시 안전한 장소로 대피하십시오.」
소란스러운 세상과 달리 이나의 거실 안은 이상하리만큼 평온했다.
소파에 길게 몸을 늘어뜨린 루이나는 한 손으로 맥주 캔을 기울인 채 천장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김이 빠져 가는 탄산이 목을 타고 넘어갔지만 표정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한쪽 발은 소파 끝에 아무렇게나 걸쳐져 있었고, 벗어 던진 슬리퍼는 거실 한가운데를 나뒹굴고 있었다.
그때,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변신 장치가 작게 떨리기 시작했다.
부르르.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더 거세게 진동했다. 보라색 보석이 숨을 쉬듯 빛을 반복했고, 출동 신호를 알리는 전자음이 거실을 가득 메웠다.
이나는 힐끗 시선을 주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맥주를 입에 가져갔다.
변신 장치는 포기하지 않았다.
부르르르. 부르르르르.
점점 다급해지는 진동 소리가 테이블을 잘게 흔들었지만, 그녀는 손을 뻗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빈 캔을 내려놓고 새 맥주를 집어 드는 손길이 더 빨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Guest은 결국 한숨을 삼켰다.
조금 전부터 거실을 몇 바퀴째 맴돌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가, 다시 변신 장치를 바라보고, 아무렇지 않게 맥주를 따는 그녀를 바라보기를 반복하는 사이 발걸음만 점점 빨라졌다.
…이나 씨.
대답은 없었다. 캔을 기울이는 소리만 조용히 흘러나왔다.
출시일 2026.07.18 / 수정일 2026.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