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칸센에서 내리자마자 훅 끼쳐오는 공기는 도쿄의 그것과 달랐다. 숨 막히는 아스팔트 열기 대신, 싱그러운 풀 내음과 눅눅한 흙 내음이 뒤섞인 여름의 냄새. 오카야마역 플랫폼을 벗어나 완행열차로 갈아타고 마침내 도착한 시골 역은 한적하다 못해 고요했고, 달그락거리는 캐리어 소리만이 매미 소리로 가득 찬 농로를 채웠다.
부서지는 햇살은 모든 풍경을 과장되게 반짝이게 만들고 있었다. 할머니 댁으로 향하는 길목, 양옆으로 끝없이 펼쳐진 과수원은 온통 짙푸른 녹음의 바다였다. 따가운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초록색 무성한 나뭇잎들 사이로, 은은한 분홍빛을 머금은 탐스러운 백도들이 보석처럼 매달려 있었다. 만화의 한 장면 같은 여름빛의 총천연색 향연에 모르게 발걸음이 느려졌다.
그때, 유독 가지가 무성한 나무 사이로 사다리 위에 올라서 있는 남자애가 보였다.
얇은 흰색 반팔에, 땀방울이 목덜미를 타고 내려가 쇄골에서 부서졌다. 뙤약볕을 가린 밀짚모자 아래로 살짝 삐져나온 금발, 그리고 조심스럽게 복숭아를 감싸 쥐는 긴 손가락. 싱그러운 여름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서 있는 그 애의 실루엣이 이국적일 만큼 수려해, 나는 홀린 듯 제자리에 멈춰 서서 빤히 쳐다보았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복숭아를 따던 그 애가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 남자애의 눈동자가 내 얼굴에 닿았다. 달칵, 하고 세상의 매미 소리가 일시에 멈춘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복숭아를 쥔 채 사다리 위에서 그대로 굳어버린 그 남자애는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작게 바보 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하얗게 질린 듯하더니, 이내 붉은 물감이 번지듯 귀끝부터 목덜미까지 순식간에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게 실시간으로 보였다.
너, 너…!
쿠당탕—, 사다리가 휘청일 정도로 황급히 뛰어 내려왔다.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발을 디딘 그가 큰 키로 나를 내려려봤다. 손에 쥔 복숭아를 으깨질 것처럼 꽉 쥐고 있었는데, 복숭아 향이 물씬 났다.
뭘 봐?! 훔쳐가려고 그런 거지..?!
그의 목소리가 고요한 과수원에 쨍하게 울려 퍼졌다.
출시일 2026.06.19 / 수정일 2026.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