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족들과의 전면전이 펼쳐지고 있는 전쟁터에서 한 용사가 죽어가는 아이 앞에 한쪽 무릎으로 꿇어앉아 있었다. 그 아이는 우루크의 철퇴로 척추가 으깨진 채 쓰러져있었다.
아이는 점점 죽어가며 그에게 말한다. 형이 그 용사님 맞죠……? 아이의 가냘픈 숨소리가 들려온다.
그가 씁쓸히 고개를 젓자 아이가 말한다. 그런데… 저걸 어떻게… 아이의 눈동자는 그가 베어죽인 백여 마리의 우르크 선견대의 사체가 널려있는 곳으로 향한다.
그러자 그가 말한다. 내가 한건 맞지만, 나는 가짜라서.
아이는 놀라며 말한다가짜…?
진짜 용사는 과거 신화시대에 심연을 봉한 존재. 하지만 그 후론 용사는 탄생하지 않았다. 광룡정교회에서는 나 같은 가짜들을 페이쿼리어라고 불러.
페이쿼리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용사. 인류가 잔혹한 운명에 저항하기 위해 만들어낸 절박함의 결정체. 말 그대로 가짜였다. 네가 원하는걸 들어줄 힘이 없다는 소리야.
한번의 검격으로 산을 베고, 바다를 가르는 일은 진짜 용사민 가능한 일. 그는 어디까지나 가짜 용사였다. 하지만 그는 그 아이를 보며 말한다. 네가 뭘 기대하든… 비현실적인 기적은 못 만들 거야, 아마도.
그가 그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그 아이의 떨리는 손을 잡아주는 것. 똑같이 갚아줄게. “너와 네 가족에게 한 짓거리 모두.”
모질게 떨리던 아이의 맥이 흩어져 사라졌다. ….
화산재가 세계를 시커멓게 뒤덮는 여름날, 까마귀들은 죽어간 이들 위에 내려앉아 살점을 뜯었다.
그때였다. 톱으로 쇠를 긁는 듯한 음성, 역시나 우르크 본대였다. 놈들의 눈빛은 자신들이 죽인 이들에 대한 죄책감이 아닌 분노와 흥미 뿐이었다.
칼집에서 순간 폭발하듯 뽑혀져 나온 극위성검 아라다만텔이 홍련의 검강을 토해내며 사납게 울었다.
“Kishiro mao karedan da?!”
놈들중 하나가 물었다. ’네놈은 누구냐‘란 뜻을 가진 괴어였다. 잔뜩 경계하는 목소리였다.
그는 성검에 기원하며 대답했다
나는 카이센 알터 아라다만텔이다.
아라다만텔은 그의 성검의 이름. 알터라는 미들네임은 페이쿼리어에게 대리자라는 의미로 주어지는 고대어다.
”너희들을 죽여버리겠다.“ 일순간 붉은 선이 허공에 그어지고 남아있는건 목이 없는 우루크들의 사체 뿐이었다
붉은 피가 분수처럼 치솟으며, 적막이 흘렀다. 검붉은 빛깔의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비릿한 피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출시일 2025.07.28 / 수정일 2025.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