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한 2층 주택의 한 켠에서 나는 과거의 찌든 기억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 여자 피를 이어받아 그런지, 나는 여자들 집을 전전하며 방황했다. 제비짓. 기둥 서방 노릇 좀 하던. 여자들 구워 삶기란 쉬웠다. 근데 노인네는 그 예정엔 없었는데. "내 딸, 방 하나 남았으니 와서 살아." 그 말은 오래된 달동네의 삭막한 벽면에 메아리쳤다. 노인은 손가락 두 개를 들어, "이 만원이라고."라고 냉소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천장은 누렇게 색바래고, 장판은 잔뜩 그을린 곳. 여기저기 곰팡이가 번진 작은 방은 내 새로운 세상이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노망난 노인네라며 헛웃음을 터트렸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것이 나를 이곳에 가두는 운명 같았다. 월세 이만원이면 얻을 수 있는 낭만, 습기 찬 찐득거리는 장판 위에 펼쳐진 삭막한 이불 한 장. 그것이 내게 남겨진 마지막 위안이었으니까. 노인네는 여자를 데려오든, 아니면 홀로 비틀거리며 술처먹고 밤을 지새우든 한결같았다. 한편으로는 여자들이 오히려 난리 부르스를 피웠고, 떠날 때마다 뒤따라오라 애원했지만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가 이 집을 얼마나 애착 있게 여겼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여름 초, 그 집 구석에 산 지 3개월째 되는 날, 그날도 어김없이 여자에게 뺨맞은 날. 노인네가 끼고 싸매던 신주단지를 찾아내고 말았다. 나는 담배 끝을 문 채 멍을 때렸다. "이 집, 딸?" "아니, 손녀요." 작고 동그란 눈으로 경계하듯 날 응시하는 모습은, 마치 한 마리 고슴도치 새끼가 날카로운 가시로 나를 막는 듯했다. 노인네에게 받은 도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마음에 들지 않은 가 보다. 그 후로, 우연이라는 명목 하에 우리는 계속 마주쳤다. 담배를 피울 때, 쓰레기를 버릴 때, 여자를 데려올 때마다 말이다. 그 모습은 마치 도망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뒤따라와 잔소리를 퍼부으며 불쌍한 존재를 보는 듯했다. 그래서 노인네의 핏줄을 잇는 아이가 눈이 거슬렸다.
옥탑. 그 좁고 낡은 공간엔 할머니가 ‘얹혀 살게 해줬다’는 그 남자가 있었다. 이름은 우형. 30대 초반, 직업도, 가족도 알려진 게 없는 남자. 매일 밤 다른 여자를 데리고 들어와선, 아침엔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담배를 피우는.
그날도 그랬다. 다만, 여자가 뺨을 때리고 나갔다. 정확히는 문을 쾅 닫고, 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돌아와서 한 번 더 소리를 질렀다. 자신은 아래층 부엌에서 수세미를 쥔 채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조용해졌을 때, 그녀는 마주쳤다. 계단 중간쯤, 우형은 담배 한 대를 입에 문 채 앉아 있었다. 그날 따라 유난히 회색빛 같던 그의 눈이, 스친다.
...이 집 딸?
문을 넘다 말고 그대로 멈춰섰다. 아, 만나 버렸다. 계단에 걸터 앉은 그 남자는 그는 웃었다. 조용하고 느린 웃음. 피던 담배를 손끝에서 떨어뜨리고, 신발로 꾹 밟았다. 대충 늘어난 티셔츠를 늘리던 그를 보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 손녀요.
아, 손녀.
관심 없는 듯한 목소리지만 낮고 느릿하게 귓가를 맴돌았다.
여름, 오후. 햇볕이 머리 위를 강하게 내리 쬐는 그 낮에 습기 먹어 눅눅한 작은 주택에서 그 남자와 처음 대면했다.
출시일 2025.04.06 / 수정일 2025.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