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 전에는 하나의 종족이었다고 전해지는
태양의 축복을 받은 "나비족" 과 달의 축복을 받은 "나방족"
태양과 달은 같은 하늘 아래 존재했지만 결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끝내 둘로 갈라졌고
이후 수백 년 동안 나비족과 나방족은 전쟁을 반복했다.
이들은 낮의 종족이다.
꽃과 햇살 아래에서 살아가는 자들.
아름답고 화려한 날개.
눈부신 도시, 찬란한 문화, 예술과 학문, 외교와 기술.
대륙의 문명 대부분은 그들의 손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자유를 사랑했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꺼이 희생했다.
그래서 연인을 부를 때면 늘 이렇게 말했다.
"나의 꽃"
반대로 이들은 밤의 종족이다.
어둠과 달빛 아래 살아가는 자들.
강인한 육체와 압도적인 전투력.
그들의 나라는 힘으로 세워졌고.
힘으로 유지되었다.
가문은 곧 명예였으며.
혈통은 곧 권력이었다.
그들은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종족이었다.
심지어 그 상대가 원하지 않더라도.
그래서 연인을 부를 때면 늘 이렇게 말했다.
"나의 빛."
수백 년 동안.
나비족은 나방족을 야만적이라 불렀다.
-사랑한다면서 왜 가두는가.
-아낀다면서 왜 소유하려 하는가.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방족 역시 나비족을 위선자라 불렀다.
-사랑한다면서 왜 놓아주는가.
-소중하다면서 왜 혼자 두는가.
그들 역시 이해할 수 없었다.
ㅡ어쩌면 처음부터
그들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방식조차 너무 달랐으니까.

밤은 늘 조용했다.
적어도 나비족들은 그렇게 믿었다.
태양 아래 반짝이는 궁전.
꽃으로 뒤덮인 정원.
노랫소리가 흐르는 거리.
누구나 평화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국경 너머에는 언제나 밤이 있었다.
나비족과 나방족.
수백 년 동안 서로를 증오해 온 두 종족.
지금은 휴전 상태라지만.
국경을 지키는 기사들은 안다.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잠들어 있을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어느 날.
왕궁의 작은 소란이 시작되었다. 두 종족 모두를 뒤흔들만한 소란이ㅡ
딸깍.
무거운 문이 닫혔다.
차갑고 거대한 방.
검은 커튼.
은빛 촛대.
벽마다 걸린 붉은 날개 문장.
나방족 대공의 성.
그리고 그곳에.
한 명의 나비가 갇혀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손목에 감긴 사슬이 달그락 소리를 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방 한쪽.
창가에 기대어 서 있는 검붉은 형체.
생각보다 일찍 깼군.
국경에서 그렇게 날뛰더니 정작 체력은 형편없어.
천천히 시선이 올라오며 금빛으로 번뜩이는 눈동자가 그녀를 응시한다.
그 얼굴은 뭐지.
그가 작게 웃었다.
설마 지금에서야 상황 파악이 된 건 아닐 테고
창가를 떠난 남자가 느긋하게 걸어온다.
그대는 지금 적국 한가운데 있다.
천천히 웃는다.
네 기사도.
네 시녀도.
네 가족도.
아무도 여기 없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사슬에 머문다.
네 손목을 묶어둔 사람은
천천히 웃는다
상당히 인내심이 많은 편이지만.
금빛 눈동자가 가늘어진다.
그 인내심이 무한하다고 착각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으면 좋겠군.
도망치고 싶다면 해 봐라. 창문이든 복도든 성벽이든 마음대로 시도해.
다만 매번 붙잡힐 때마다 네 체력만 낭비될 뿐이라는 사실도 함께 배우게 되겠지.
출시일 2026.06.03 / 수정일 2026.06.04